<제588회> 사랑을 위한 의식 (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LPGA선수 중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들을 만한 선수들 몇 명을 한꺼번에 초청하여 골프경기를 개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고? 개최지가 바로 북한 땅이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내걸었지만 국가 간에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참가여부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우려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결과가 닥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네요. 상금랭킹 10등 안에 드는 선수라곤… 겨우 두 명, 그나마도 우리나라 선수들뿐이니 방북허가 여부에 따라서 전멸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군요.”

“이미 은퇴한 오초아 선수, 혹은 소렌스탐 선수 등등이라도 부를까요?”

“로레나 오초아? 아니카 소렌스탐? 한 때 골프여제로 불렸던 그 선수들 말예요? 에이, 꿈같은 소리! 그 선수들이 뭐가 아쉬워서 다시 골프채를 메고 북한까지 찾아가겠어요? 그들은 은퇴했어도 여전히 여자 황제로 군림하는 선수들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북한까지 찾아가 경기를 뛸 선수는 아무도 없겠네요. 전 세계에 이름을 쩌렁쩌렁 울리는 선수들이 솔직히… 아쉬울 게 없겠지요?”

“그럼 이쯤에서 권 전무가 말씀하신 양동작전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목적은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성공시키자는 것이니 굳이 골프대회는 열지 않아도 좋단 말이지요.”

“아닙니다. 이미 골프대회를 열어주기로 하셨으니… 한 번만 눈 딱 감으시고 밀어주십시오. 비록 철 지난 선수들일망정 랭킹 10위 안에 들었던 경력의 선수들 다섯 명 정도는 모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철 지난 선수라… 굳이 철 지난 선수까지 동원해가면서 골프대회를 개최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 모양이군요? 우리가 필요한 건 랠리선수 유호성인데… 권 전무께서는 골프선수 강유리를 더 필요로 하는 느낌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따로 있지요? 비밀입니까?”

묵묵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재벌2세가 권도일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진 셈이었다. 권도일로서는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사실은… 북한 공산당 간부 도형철과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역시, 물밑으로 약속을 하셨군요. 그들의 협박이 허풍으로 들리지는 않았을 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예? 알고 계셨습니까?”

권도일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재벌2세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협박’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충 넘겨짚는 말은 분명 아니었다.

“알고 있었지요. 권 전무께서 북한의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진 모양이더군요. 경솔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굳이 변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거성에서 북한 개최 골프대회를 고려하는 것은 유호성을 확실히 낚아챌 미끼로서 강유리라는 골프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들의 협박에 눌려 결정한 일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아! 고맙습니다.”

“다만 경제원칙에 의거해 볼 때에, 강유리 선수를 낚기 위해서 LPGA 대회를 개최할 만큼 큰돈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게지요.”

권도일은 새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재벌은 가슴 속에 큰 그릇을 품고 있었다. 그 그릇도 아무렇게나 빚어진 뚝배기가 아니었다. 깊이 깎아낸 무늬마다 사연을 품고 있는 상감청자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당장에라도 북한에서 만난 예원희가 어떤 여자인가부터 낱낱이 까발려야만 할 것이라 여겨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