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지난 2010년, 성폭행을 당했던 A(32ㆍ여)씨는 자신을 성폭행한 B(43)씨를 고소했다가 결국 합의했다. 1심서 실형까지 나온 상태였지만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B씨의 변호사는 집까지 찾아와 “이런다고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냐. 합의하고 돈이라도 받는게 더 나은 것 아니냐”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는 또 B씨도 A씨의 집을 알고 있고, 합의 하지 않으면 보복할 수 있다는 암시도 계속 풍겼다. 직장도 다녀야 하는 상황서 재판을 계속 쫒아다니기도 버거웠던 A씨는 결국 포기하고 합의로 마무리했다.

범죄 피해자들이 두번 울고 있다. 가해자들이 법원 등에서 공개되는 자료를 토대로 피해자들의 주소, 연락처 등을 알아낸 뒤 협박하거나 스토킹하듯 따라다니며 합의를 종용하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8일 박광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검찰청 의뢰로 연구용역한 “범죄피해자 정보보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되 고통 받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을 열람ㆍ등사시 피해자의 연락처 및 주소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면서 보복범죄 및 협박, 합의를 종용하는 스토킹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2007년 9세 여아를 포함해 여성 7명을 성폭행한 40대 남성은 법원에서 복사한 재판기록을 보고 피해자 인적사항을 파악해 협박편지를 보내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주로 당사자나 변호인들이 재판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얻는다. 실제로 공소장이나 진술서류에는 피해자나 증인의 이름, 나이, 전화번호, 주소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성폭행, 성추행등 성범죄의 경우 친고죄로,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무죄방면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죽기살기로 개인정보를 알아내 합의하려 드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미국의 경우 2차 피해가 예상되는 범죄에는 소송기록열람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다”며 “피고인 및 피고인측 변호사의 열람등사권을 제한하고 피해자의 2차피해가 예상되면 이를 필요적 국선변호 사건으로 만드는 한편 변호사에게 증인, 참고인등 인적사항을 의뢰인에 노출시키지 않을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외에도 정보 열람 결정권 주체를 피해자측에 부여해 정보취급ㆍ관리단계서 정보의 유지ㆍ폐기ㆍ공개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인 보호범위를 명기하며 법마다 다른 책임 범위 및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인권보호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열람ㆍ등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보여지지만 피의자의 반론권을 제약하게 되는 측면이 있어 고민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