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로이 알록(56) 부산외국어대 인도어과 교수는 지난해 초 언론을 달군 화제의 인물이다. 인도 출신인 그는 지난해 1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3년 만에 ‘10만번째 귀화인’으로 등록됐다. 32년 전인 1980년 정부 장학생으로 입국, 학업에 전념하다 한국인 부인을 만났다. 인도의 명문 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직후 동북아 정치를 연구하고자 한국을 찾게 됐다가 한국을 사랑하게 돼 귀화한 인물이다. 물론 인도의 정신과 세계관을 여전히 가슴에 품은 채 말이다.
로이 교수는 최근 학계 세미나 참석차 서울에 들렀다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를 만나 ‘인도인의 세계관과 나눔’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그의 한국 말은 한국인 이상으로 유창했다.
로이 교수는 “자신은 80년대 초 암울했던 한국과 경제대국이 된 지금의 한국과 삶을 같이해 왔는데, 놀랄 만큼 발전한 한국을 볼 때 경이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 발전은 경쟁이 가져온 대단한 결과일 수 있지만, 이젠 지나친 경쟁의 폐해에 대해서도 숙고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헤럴드경제의 신리세스 오블리주 기획시리즈와 관련한 나눔에 관해서는 인도를 비유하며 “인도 부자들은 전통적으로 자기 재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보관ㆍ관리자로 여긴다”며 “대부분 떠날 때는 넘겨주고 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은 한국 부자들을 인도 부자와 비교해 꼬집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 짙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인도 출신 교수의 은근한 비판은 가슴에 와닿는다.
▶지나친 경쟁이 나눔엔 걸림돌=로이 교수는 한국 기업과 개인의 나눔이 확산되면서 기부문화가 진화하고 있는 상황은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질투’가 좀 더 파격적인 나눔문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렸다.
그는 “경쟁의 주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질투’”라며 “이 같은 요소가 작용돼 미국이 200년, 일본이 100년 동안 해낸 것(경제발전)을 한국이 30~40년 만에 이루는 바탕이 된 것이 사실이며 이것은 대단한 기적”이라고 했다.
로이 교수는 32년 전을 회고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은 만삭의 산모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아기는 태어날 때가 됐는데,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한국에서 자신이 정착한 지 30여 년 동안 엄청난 발전상을 목격하면서 자신도 뿌듯한 자긍심이 느껴졌단다.
다만 그는 “이제 어느 정도 각자의 삶이 안정됐는데도 경쟁이 여전하고, 오히려 더 치열해진 것은 개선돼야 할 것”이라며 “누구나 물질적 경쟁을 강요당한 나머지 한국의 소중한 자산, 이를 테면 옛 선비정신 등이 사라진 것은 매우 아쉽다”고 했다. 지나친 경쟁사회 탓에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인정하고, 남을 존중하는 문화도 희석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 것이다.
▶아낌 없이 나누는 인도 부자들=매년 한두 차례 인도에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그는 인도 부자들의 나눔에 대해 상세히 전했다.
“뭄베이에는 엄청난 부자들이 많습니다. 보석상인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자기 재산을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청첩장을 보내면 봉투안에 금 한덩어리를 넣어서 나눠주는 등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도 최대의 기업인 타타그룹의 독특한 철학도 소개했다. 타타그룹이 인도에서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 기업이 사회공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이 교수에 따르면 지난 1886년 인도 첫 섬유산업에 도전한 타타그룹은 당시에 전 직원에게 퇴직금을 주고, 연금도 지원하는 남다른 ‘종업원 중심의 기업’을 표방했다.
“타타그룹은 국가도 못하는 일을 기업이 실천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기초과학연구소를 만들고 핵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부도 하기 어려운 주택과 병원 공급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인도인의 아픔을 보듬으며 국민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최근 타타그룹이 후계자를 외부에서 공모를 통해 선발한 것도 기업이 한 개인이나 혈족의 것이 아니라는 발상에서 비롯됐다고도 덧붙였다.
로이 교수는 이 같은 인도의 기업철학, 경영철학은 인도인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인도인의 궁극적 목표는 (돈과 명예 등) 성공이 아니라 해탈”이라며 “이해를 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정신세계의 만족감을 중시하는 인도이기에 기업과 부자들도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명상의 나라이자 부자와 빈자가 공존하는 나라, 그래서 다소 난해한 나라인 인도에서의 나눔이 왜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며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던지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