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가 전국을 달군 8월 초, 휴가차 홍천에 온 지인과 함께 청정 오지인 내면의 한 계곡을 찾았다. 오랜 만에 만난 지인의 얼굴에는 도시의 빡빡한 일상과 업무에서 막 탈출했다는 해방감이 한껏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휴대폰에서 입과 손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계곡의 비포장 산길을 따라 차를 움직였다. 파란 하늘은 이내 보이지 않고 녹색터널만이 이어진다. 워낙 울퉁불퉁한 산길이라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르다. 잠시 후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휴대폰 통화가 끊겼기 때문. 휴대폰 불통지대에 들어선 것이다.

‘IT강국 대한민국’도 사실 강원도 첩첩산중에서는 내세울 게 못 된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심산유곡에 들어서면 휴대폰은 이내 먹통이 된다. 인터넷도 불가능하다. 자연은 이처럼 문명의 이기를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연과의 접속이 가능해진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노래하는 머루와 다래,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애절함이 묻어나오는 꽃며느리밥풀, 무심한 바위에 생명을 입힌 이끼 등이 반긴다. 흐르는 계곡물은 발을 살짝 담그면 이내 간지럼을 태우며 말을 걸어온다. 휴대폰 불통지대에서 맛보는 황홀한 자연과의 소통. 처음에 안절부절 못하던 지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는 이 순간 자연인이다.

며칠 뒤, 홍천군에 이웃한 횡성군의 산속에서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 노처녀(?)’의 초청을 받았다. 환갑을 넘겼지만 지금껏 혼자 산다. 그 곳은 산골에서도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이다. 마을 포장도로가 끝나면 그의 구형 지프로 옮겨 타고 비포장 산길을 따라 덜커덩 삐거덕 소리를 내며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처음 본 그의 숲속 둥지는 자연과의 교감이 충만한 작은 안식처다. 황토방과 구들, 나무를 때는 부엌아궁이. 그리고 집 마당에는 어릴 적에 물을 퍼 올리던 펌프도 놓여있다.

작은 거실에 들어서자 특이하게도 벽면 아래쪽으로 창문이 나 있다. 왜냐고 물었다. 그는 “늘 거실에 앉아서 내 자식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뒤, 창문 밖으로 손수 꾸며 놓은 정원의 야생화들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런 무위의 아름다움만이 활짝 피어있다.

그는 매일 수시로 자기 자식들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다. 그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그 사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항상 자식들과 대화를 한다. 물론 주변의 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와 인간을 내려놓고 늘 자연과 소통하는 그는 진정한 자연인이자 자유인이다.

근래 들어 베이비부머(55~63년생 758만여명)를 중심으로 한 귀농ㆍ귀촌이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다. 귀농ㆍ귀촌은 곧 전원생활이며, 이는 도시를 떠나 자연인이 되고자 함이다. 자연은 태곳적부터 스스로(自), 그대로(然) 이다.

인간이 자신의 태어난 자연으로 다시 들고 안 들고는 오직 개개인 선택에 달려있다. 물질과 욕심, 집착으로 점철된 도시를 내려놓기만 하면 누구나 자연인이 될 수 있다. 휴가철 일시 자연인이 아닌 영원한 자연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