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의 독재자는 사라졌지만…실질적 민주화까지 멀고 먼 여정
지난해 3월 시리아 남부 도시 다라,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골목길 담벼락에 이웃 나라 시위대의 구호를 흉내 낸 낙서를 하고 있었다. 시리아 정부의 비밀경찰들은 이들을 색출해 체포했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여기에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시위 규모는 급속도로 커졌다. 핏빛 서막은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그린 낙서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 달 후 한 소년의 죽음으로 시리아 내전은 전기를 맞았다. 함자 알카티브라는 13세 소년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뒤 한 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여러 번 총을 맞은 흔적과 고문당한 상처로 뒤덮인 그의 시신은 시리아 국민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반정부 시위의 물결은 시리아 전역으로 퍼졌다. 그로부터 1년5개월, 시리아는 사망자만 2만명이 넘으면서 피로 물들고 있다.
한 튀니지 청년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아랍의 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랍의 봄’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치지형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대서양 연안 모로코부터 인도양 연안 오만까지 11개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이집트 등 4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됐다. 민주화 시위의 불길이 단숨에 이들 지역을 휩쓸 수 있었던 이유는 독재자들의 장기 집권으로 국민의 삶이 극도로 피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미완의 혁명이다.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민주화가 실질적으로 진척되지 않아 혼란은 여전하다.
▶독재자 4명 쓰러뜨려=2010년 12월 튀니지 청년 노점상의 분신자살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와 리비아로 번졌다. 시민들은 수십년 동안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와 무아마르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혁명의 바람은 아라비아 반도까지 넘어가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도 물러나게 했다.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 4명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민주화 시위로 제일 처음 하야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이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튀니지 군사법원은 지난 19일 시민혁명을 유혈진압해 시위대 300명가량이 숨지게 했다면서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튀니지 정부의 벤 알리 송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어 형 집행은 미지수다. 그동안 재판은 벤 알리가 참석하지 않은 궐석재판 형식으로 진행됐다.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말로도 비참하다. 지난해 1월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시작된 지 18일 만에 30년 넘게 지켜온 권좌에서 물러난 그는 결국 법정에 섰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실탄과 최루탄 등을 쏘며 강경진압하도록 지시해 846명을 숨지게 하고 부정축재한 혐의다. 그는 최근 법정 최고형인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뇌졸중을 일으키기도 했다.
42년 동안 장기 집권한 카다피의 최후는 더 처참하다. 반군에 끝까지 저항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고향 시르테 인근에서 반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시신은 한동안 미스라타의 한 정육점 냉동창고에서 전시되다 사하라 사막의 비밀 장소에 매장됐다. 4남 무타심은 카다피와 함께 잡혔다가 숨졌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도 지난해 11월 생포돼, 카다피 일가는 대부분 죽거나 체포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33년 동안 장기 집권한 살레 대통령은 ‘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독재자 4명 가운데 유일하게 합의된 절차에 따라 정권을 이양했다. 이에 국제사회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예멘 방식으로 정권을 이양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머나먼 민주화의 길=정권교체가 이뤄진 나라들의 정국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선거를 통한 민주화가 이뤄진 튀니지를 제외한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은 정국이 혼미하다.
이집트에서는 신임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군부가 권력의 실세로 남아 있어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반군 세력들의 대표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가 과도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친카다피 세력은 아직도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고, 반군 세력도 통합되지 않고 있다.
예멘에서는 독재자 살레 밑에서 부통령을 하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선거에 단독 출마해 지난 2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예멘의 민주화 인사들은 새 정부에 불복하고 있고, 알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무장 테러도 이어져, 국가 재건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로코 알제리 바레인 요르단 오만 등은 ‘아랍의 봄’이 확산되자 시민에게 민주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민주화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관련 로드맵 역시 불투명하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확대되면서 아직 해결기미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총리와 장관, 고위장성 등 이너서클(핵심권력집단)이 줄줄이 망명하면서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리비아에서도 최고위층 인사가 잇따라 탈출해 반군을 지지하면서 카다피 정권이 몰락했다. 미국 정부 등 국제사회도 본격적으로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 이후를 대비해 ‘포스트 아사드’를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