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운영은 고도의 통치행위 타협·통합 전제돼야만 가능 아버지·참여정부 그늘 못 벗은 채 후보들, 진영논리에 편가르기만
승자독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구적인 반성, 그리고 새로운 대안 모색의 시대를 반영하듯 대선 후보들이 여럿 경쟁 중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서 10명이 예선에 출전했다. 꿈이 이뤄지는 나라, 공평과 정의로운 나라, 저녁이 있는 삶, 평등국가, 선진강국 등 청사진들이 현란하다. 장외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정의ㆍ평화ㆍ복지를 역설하며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이들이 그린 청사진의 공통분모는 경제민주화, 일자리 늘리기, 복지 확장, 사람 중심으로 요약된다.
이런 게 될까 싶다. 예선전부터 재 뿌리는 게 아니다. 대통령 혼자, 또 정쟁을 업(業)으로 삼는 한국 정치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담론을 턱 내놓고, “나만이 할 수 있다”고 하니 믿음이 안 가고 현실성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성장의 그늘인 양극화 해결과 복지 확대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성장 없이 지속가능 복지는 불가능하고,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재벌개혁은 분풀이일 뿐이다. 수출입총액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지난해 113.2%였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똑같이 마주치는 현실이다.
때문에 복지를 어느 정도로 늘릴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과 기업이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말처럼 경제민주화의 개념은 뭔지, 그 구체적인 실현방안은 무엇인지부터 여당과 야당, 대선주자들 간에 밑그림을 합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무현-이명박 정권을 통해 5년을 주기로 좌-우, 보수-진보로 왔다갔다 스윙의 폭이 너무도 컸다. 과거는 부정됐고, 그 부정이 또 부정됐다. 경제학 용어로는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다. 수온을 못 맞추고 찬물, 뜨거운 물 수도꼭지만 돌리다 끝나고 말았다. 정책 오류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으로 날을 새웠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이명박 정권의 촛불집회 같은 것들이다.
다양한 목표와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복합적으로 조합해야 하는 국가운영은 고도의 통치행위이며, 전제조건은 타협과 통합이다. 하지만 스스로 2013년 체제의 적임자라고 나선 대선주자들은 여전히 진영논리에 갇혀 편가르기에 한창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후보는 “5ㆍ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고, 반론이 나오자 “국민 50% 이상이 내 발언에 동의한다”고 했다. 사적(私的) 역사관과 공적(公的) 역사관을 혼돈하는 이런 퇴행적 모습은 20~40대 유권자들과 담을 쌓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참여정부는 총체적으로 성공한 정부”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과 반대로 가기’만으로도 집권이 가능했다. 노무현을 넘겠다고 했는데, 스스로 비노진영의 비토세력을 형성했다. 양 진영이 이러는 사이, 안철수 원장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 단 한 권의 정책대담집으로 중도층을 흡수하고 변화와 미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후보는 5ㆍ16에 대한 입장 변화 없이 아버지의 그늘에 있을 것인가. 또 문 후보 등 민주당(전신은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정권교체만 요구할 것인가. 지금 유권자들은 박정희와 노무현, 절반은 행복하고 절반은 불편했던 과거의 향수 속에 있는 대선후보들을 보고 있다.
정덕상 정치부장 jpurn@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