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바람 부는 길(3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마음으로 찍어놓은 여자가 더 큰 다이아 반지를 사달란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를 침대로 유인하기만 하면 넝쿨이 줄줄 딸려올 것이 뻔하다. 그 넝쿨이 보통 넝쿨인가? 무려 800억 원의 현찰과 이어진 찬란한 넝쿨이다. 사업을 잘 하려면 이럴 때 재빨리 답을 도출해 내야 한다. 정답은 더블 베팅! 그렇다면… 당장에 비행기 표를 끊어서 떠나야만 할 것이다. 어디로?
“은혜 씨! 오드리 헵번이란 영화배우 아세요?”
“그럼요. 인형처럼 자그마한 몸매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지닌 여배우?”
“그럼 오드리 헵번이 조지 페퍼드와 함께 찍은 영화도 잘 아시겠네요? 업스타일 머리에 블랙 드레스를 입고… 휘황찬란한 보석상점의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빵 한 조각을 뜯고 있던 그 유명한 장면!”
“아, 알겠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란 영화죠?”
“빙고! 잘 맞추었어요. 당장 그리로 갑시다.”
“그리로? 혹시… 티파니로?”
“그래요. 까짓 거, 당장 떠납시다.”
“그러면 우리도… 티파니에서 아침을?”
양은혜는 놀라서인지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 잠시 패닉상태에 빠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민 회장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함께 맞이하자는 뜻인지,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는 뜻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눈을 뜨자는 말로 들렸다. 함께 잠자려면 방을 하나만 잡아야 하고, 그러다보면 함께 샤워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함께 샤워하다 보면 못 볼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발동이라도 걸리면…
“영화장면처럼 해봅시다, 까짓 거. 티파니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해 보자고요. 그런데… 티파니가 어디에 있지요?”
사실 유민 회장은 티파니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티파니라면 생각나는 것이 9인조 여성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중 한명일 뿐이었다. ‘태연’, ‘제시카’와 함께 룰루랄라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온갖 시름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그런 마법의 소녀 티파니.
“어머나, 지금 농담 하시는 거지요? 티파니가 뉴욕에 있는 유명한 보삭상이라는 걸 모르고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요?”
“아하, 난 티파니가 아직도 답십리에 있는 줄 알았지요. 언제 뉴욕으로 이사 갔을까?”
“정말 재미있네요. 답십리? 청량리 옆에 있는 동네?”
“맞아요, 청량리와 망우리 사이에 있는 답십리. 내가 어렸을 적에 답십리에 있는 동시상영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거든요? 그래서 티파니라고 하면… 아직도 답십리에 있는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답니다.”
제기럴! 얼렁뚱땅 이렇게 받아치긴 했지만 티파니가 뉴욕에 있는 보석상이란 말에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얼치기 상식으로 잘난 척 하다가는 늘 이렇게 당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한 번 입에서 뱉어낸 말은 지켜내야만 신사란다. 신사가 되기 위해서 유민 회장은 일단 뉴욕 행 비행기 티켓부터 두 장이나 끊어야 할 판이었다.
“극장에서 동시상영을 했어요? 그게 언제 적 얘기예요?”
“아마 70년대 후반까지는 그런 극장이 많았을 겁니다. 옛날생각을 하니 갑자기 쓸쓸해지는 군요. 하여간 말이 나온 김에 당장 티파니로 떠납시다. 거기에서 아침 좀 먹자고요.”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자는 말이 그토록 섹시하게 들렸던가? 양은혜는 오로지 그 아침의 정경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