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은 용의 턱 아래에 거슬러 난 비늘로서 이것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해 건드린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는 중국의 고전 ‘한비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영화 ‘역린’은 제목을 통해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영화 ‘역린’은 ‘정유역변’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정조(현빈 분)은 자신의 생명과 임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할머니 정순왕후(한지민 분)와 싸웁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쪽이 옳았다고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문제는 자신들의 권력투쟁 때문에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 혜경궁 홍씨(김성령 분)는 자신의 아들인 정조를 지키기 위해 10세 궁녀 복빙(유은미 분)에게 독약을 주면서 시어머니인 정순왕후를 독살하도록 명령합니다. 극 중의 내용과 달리 정순왕후가 독살됐다면 혜경궁 홍씨와 복빙에게 형사적으로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만약 혜경궁 홍씨의 명을 받은 복빙이 정순왕후를 독살하는데 성공했다면, 혜경궁 홍씨에게는 존속살해죄가 성립할까요? 정순왕후가 혜경궁 홍씨의 시어머니로서 사망한 배우자인 사도세자의 직계존속이기는 하지만, 혜경궁 홍씨에게는 존속살해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존속살해죄의 존속은 생존한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혜경궁 홍씨의 명을 받아 정순왕후를 독살한 복빙은 처벌되지 않습니다. 정순왕후가 복빙의 존속이 아니므로 존속살해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앞서 복빙은 10세로서 형사 미성년자에 해당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살인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합니다. 간접정범이란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과실범으로 처벌되는 자를 이용하여 범죄를 실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혜경궁 홍씨는 형사처벌되지 않는 형사미성년자인 10세 복빙을 이용했기 때문에 살인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합니다.

제작단계부터 배우 현빈의 군대 제대 후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역린’은 초호화 캐스팅과 화려한 영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여느 시대극과 마찬가지로 진행이 느려 박진감이 떨어지고 산만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품 초반에 정조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성을 다하라! 그러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말에 희망을 품고 노력하고 도전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말에 가슴이 벅찬 희망을 품기에는 우리 사회가 실망과 좌절, 불신으로 상처가 너무 깊은 듯합니다. 적어도 국민, 아니 어린 학생들의 실종과 사망을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는 대한민국이기를 소망합니다.

자문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