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대를 맞아 빈자(貧者)와 부자(富者)의 갈등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 특히 ‘부(富)의 인문학’이라는 주창자 3명의 교수가 모였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장), 임진호 초당대 한중정보문화학과 교수, 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헤럴드경제가 연중기획으로 진행중인 ‘신(新)리세스 오블리주’ 관련 좌담회에서 한 목소리로 “부자와 가난한 이의 막힌 소통을 뚫을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것이 바로 ‘부의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소통사회, 열린사회, 나눔사회의 당위성을 기존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설명해 줄 수 없다”며 “건강한 부를 축적하고 이후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당당한 부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추구하는 ‘부의 인문학’은 빨리 정립돼야 할 학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최근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양극화만을 얘기하는데, 심리적 양극화가 더 심한 문제”라며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 영역인 인문학은 이같은 심리적 양극화를 줄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인문학의 연장선상인 ‘부의 인문학’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학문”이라며 “앞으로 학계를 중심으로 올곧은 학문영역으로 세우고, 사회나 기업에 적용되는데 기여하겠다”고도 했다.
▶사회(김영상 재계팀장)=나눔시대에 인문학이 중요시되는 것은 알겠는데, 왜 부의 인문학인가.
- 한동철 교수=먼저 인문학이 왜 중요한 지 진단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기존 경제ㆍ경영은 효율만 따지는 것이다. 왜 우리가 나눠야 하는 지, 기업이 이익을 낸 후 왜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기초인 인문학이 아니면 나눔시대를 정의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부의 인문학’은 인문학으로 부터 출발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이 인문학적 소양이 있으면 어떻게 건강한 부자가 될 수 있는 지, 왜 주변과 나눠야 하는 지 깊이 성찰할 수 있다. ‘부의 인문학’은 한마디로 빈자와 부자의 막힌 소통을 뚫어주는 유일한 길이다. 꼭 학문의 울타리에 갇힌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기업 전체적으로 파급될 수 있는 폭발력도 있다고 본다.
- 임진호 교수=경제발전이 될 수록, 부가 편중될 수록 우리 사회에선 정신적 공허감이 짙다. 소통의 방식이 진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소통의 문제를 계약이나 경제ㆍ경영시스템이 아닌 인본주의, 인문학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나 상업적인 측면에서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새 시대의 당위성인 도덕, 윤리, 사회 규범 등을 일상생활에 접목하는 방식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시대적인 요구는 열린사회, 다문화사회다. 정치 경제 문화 역사가 하나로 융합돼 새로운 큰 틀을 짜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가 ‘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부자들이 많아지면 다문화사회 소통에 유효하다. 그래서 ‘부의 인문학’은 필요하다.
- 조우호 교수=막스 베버는 “부를 쌓는 목적은 영화가 아닌 신에게 드리는 예배의식과 같다”고 했다. 그의 얘기의 큰 틀에는 노동과 직업윤리가 있다. 부자는 노동을 통해 신에게 인정 받아야 하고, 부자가 됐다고 해서 귀족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를 세습시키기 위해 부를 쌓아서는 안된다. ‘부의 인문학’은 이같은 논점을 이해시키고 전파시킬 수 있다.
▶사회=그렇다면 ‘부의 인문학’에서 말하는 부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 조 교수=개인적인 측면에서 부를 쌓을 때는 나와 자손의 안위만 위하는 게 아니라 나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내 행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자라고 생각한다.
- 한 교수=지금 부자학연구학회를 이끌고 있는데, 우리 학회의 지향점은 ‘빈자와 부자가 함께 가는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주변의 더 어려운 사람을 껴안고 가는 이가 진정한 부자다. 부는 일정 부분이 지나면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다. 건강한 부자는 이를 잘 알고 행사는 이들이다.
- 임 교수=부자의 조건을 말하기 전에 부자에 대한 시각을 극단적으로 말하면 범죄시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다. 부의 실천을 양성화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본인(부자)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향후 부자들을 규정할 수 있는 척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 그렇다면 ‘한국형 부자 모델’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인데.
- 조 교수=좋은 말이다. 부자와 성인군자를 동일시 할 필요는 없다. 부를 일굴 때 소신과 원칙, 건강한 철학이 통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런 것을 모아 분석할 수 있다면 한국형 부자의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세계의 부자를 비교하고 개인윤리나 사회제도 틀에 적용해 본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 한 교수=부자학연구학회에서 많은 부자 모델을 만나 봤다. 유명한 경부 최 부자로 부터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번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할머니 등 많은 이들을 만나 봤다. 이들이 다 모델이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부자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 부의 인문학을 어떻게 기업 경영에 적용할 수 있나.
- 임 교수=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주변과의 소통 의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경제ㆍ경영 쪽으로만 포커스를 둔 현재 부의 개념에 몰두하고 그것에 ‘인간’이 빠진 경영에 집착한다면 사회갈등 체제 극복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양극화 해소에 기업의 주된 의무는 아니지만, 시대적 요구가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 경영’을 실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업하는 분들이 ‘부의 인문학’을 끌어들여 창의적 나눔경영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 조 교수=기업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도 물질적 논리만 적용할 게 아니라 정신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자본주의는 물질적 논리에 치중했다.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약자를 껴안는데 인색했다”며 자본주의 반성론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기업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최근 인문학을 경영에 접목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는데, 부의 인문학에 기초한 사회공헌 등 새로운 버전도 나올 것으로 본다.
- 한 교수=부의 인문학은 태동기다. 발화기까지는 한참 걸릴 것이다. 그렇더라고 해도 책을 펴내고 강연을 하고, 학회를 만드는 등 전파 작업을 계속하려 한다. 기업은 인문학을 끌어들여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학계에서 인문학을 활용한 신경영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 부의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무엇인가.
- 한 교수=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라는 고전적 개념에서 벗어나 부의 인문학적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다소 감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기존 경제학 등에서 풀지 못한 심리적 양극화 완화도 추구한다.
- 조 교수=토마스 만이 쓴 ‘부텐부르크가(家)’에서는 부를 세습시키려고 하고 기업을 일궈 권력화하려고 하면 끝이 비참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변과 나누는 삶이, 나누는 경영이 사회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음을 인문학을 통해 입증하고 싶다.
- 임 교수=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부의 인문학이 확고히 정립되면 반기업 정서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김영상ㆍ문영규 기자> / ysk@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