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해외연수·취업휴학… 그나마 남아있는 아파트마저 평수줄여 외곽으로 외곽으로

10명중 7명 “노후준비 없다” 은퇴 빈곤층 전락 우려 이젠‘ 無錢장수’걱정해야

은행원으로 올해 예순의 나이에 은퇴한 김지만(가명) 씨. 명색이 뱅커라 재테크에 부지런을 떨었고, 동료들이 명예퇴직할 때도 살아남았다. 거액의 퇴직금마저 챙겨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다르다. 자식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목 돈이 두 차례 나가야 하고, 모아놓은 자산이 적지 않다 해도 갑자기 끊긴 월급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들놈은 장가갈 때 어디에 몇 평짜리 집을 사줄 수 있는지를 은근히 묻곤 한다.

“예전엔 사업하는 친구들을 장사치라며 은근히 무시했는데 정년 없이 일하는 걸 보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 자녀들 결혼시킨 친구들도 부럽죠. 앞으로 30~40년은 버텨야 하는데,30년 일해서 30년 버티기가 쉽겠습니까?”

젊어서 ‘무전여행(無錢旅行)’을 마다 않던 세대들이 이제 ‘무전장수(無錢長壽)’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장수’보다는 ‘무전’이 핵심이다. 결혼은 늦어지고 정년을 채우기는 더 힘들어졌는데, 기대수명이 늘어난 ‘리타이어 푸어(retire poor)’로 전락하는 중산층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7면

통계청은 지난해 말 100세 이상 초고령자를 뜻하는 ‘상수(上壽) 노인’이 1800여명에서 2060년 4만명을 넘어서 30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노후준비 방법은 과반수가 ‘없다’이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최근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은퇴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67.4%에 달했다. 이 같은 양상은 몇 해 전에도 같았고,고령자일수록 더 심하다. 통계청이 지난 2009년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노후준비 방법을 묻는 설문에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응답이 61.0%였다. 노후준비가 돼 있다고 응답한 39%도 ‘국민연금’(29.6%)을 노후준비 방법으로 가장 많이 꼽았다. 개인적인 대비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럼 자녀에게는 의탁할 만할까?

중견기업에서 퇴직을 1년여 앞둔 정모(56) 씨는 얼마 전 집을 서울 외곽으로 옮기면서 평수를 줄였다. 그는 “(이제 대학 1학년인) 딸이 어학연수와 각종 취업 경험 등을 위해 휴학 1년은 필수로 여기는 터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을 줄였다”고 말했다.

“우리 때야 부모를 봉양한다는 개념이 있었고 실제 봉양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식에 얹혀사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나이 여든 넘어 은퇴한 자식에게 용돈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전문가들은 정 씨처럼 ‘체면 차리지 않고’ 부동산에 묶인 자산을 유동화하는 것만으로도 은퇴준비의 반을 이뤘다고 평가한다. 은퇴 후 생활에 대한 전문가들의 핵심 조언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은 “예전에 50대는 삶이 20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의 50대는 살아온 만큼이나 더 살 수 있는 세대”라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하고 부동산 등 고정자산은 처분해 수익 높은 자산관리로 과감히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후 최소 생활비조차 벌지 못하는 ‘은퇴 빈곤가구’는 지난해 기준 101만5000가구로 은퇴자 가구의 40%에 이른다. 특히 은퇴자 가구의 평균 총자산 3억3000만원 중 3분의 2가 부동산에 묶여 은퇴 빈곤층으로의 전락을 스스로 부채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연진 기자/yjsu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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