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의 지적(知的) 열망은 현 시대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아득바득 살게 됐느냐’ ‘이렇게 사는 내 삶은 괜찮은 것이냐’ ‘내가 희생하면 우리 아이들의 세상은 나아지느냐’…. 이런 근원적인 물음이다. 그런 물음에 답은 서점에 있다. 동시대의 민심(民心)과 요구를 파악하려면, 집약된 지성이 한데 모인 서점가의 풍경을 살펴보면 된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서적은 이 시대 대중들의 민심과 시대정신의 바로미터다.
몇 달 전부터 서점가에 진보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 세력을 향한 대중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안풍(安風)’도 기존 정치권과 다른 건강한 정치 세력에 대한 기대감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새로운 세력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바람직한 리더상에 대한 요구가 서적 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점가에 쏟아지는 ‘대통령 자격론’은 지금껏 우리 사회가 갖지 못한, 바람직한 지도자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연장선 상에 있다.
▶정치서적 34% 증가, 쏟아지는 제왕ㆍ대통령論=“귀를 열고 예스맨을 멀리하라” “전능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뇌물은 나를 망친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1년여 앞두고 서점가에는 다음 리더십을 향한 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안풍’으로 대변되는 새 정치바람과 지난 4년간 현 정부에 느낀 실망감이 주문사항으로 투영됐음을 보여준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정치서적의 출간은 전년 동기(2010.1.1.~11.21) 대비 34%가량 증가했다. 특히 리더십, 정치, 왕, 대통령 등의 단어가 들어간 서적의 출간이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세종과 같은 역사 속 정치리더십, 안철수 신드롬을 파고든 서적을 비롯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집필한 직설적 대통령론(論) ‘대통령의 자격’이 12월 1일 출간된다.
▶600년 전 세종 신드롬, 조선시대 王을 부르다=우선 눈에 띄는 책은 세 명(박종기ㆍ김기흥ㆍ신병주)의 역사학자가 쓴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다. 저자들은 책에서 우리나라의 전근대기 역대 제왕 20인의 국가 통치 리더십을 평가했다. 예컨대 광개토대왕은 웅대한 비전과 역사적 통찰력으로 고구려를 일으켰다. 저서는 나라의 위기 국면에서 발휘된 여러 제왕들의 통치방식을 재평가하며 현대 정치를 고찰한다. 유럽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병력을 동원한 죽고살기 식의 전쟁은 아니지만 경제상황에서 ‘하드코어’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600년 전 조선시대의 현군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이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등장하는 세종은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세운 군주. 폭력과 공포 정치가 아닌 어진 인성을 바탕으로 ‘애민정치’를 펼친 세종의 통치관은 서민들과의 소통을 주축으로 삼았다.
최근 국가미래연구원(IFS)은 ‘세종대왕의 바른 정치:외천본민’을 출간했다. ‘외천본민(畏天本民)’은 하늘을 우러러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세종대왕의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바른 정치의 기본 원칙,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경제개혁법,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법까지를 한데 담았다.
세종의 리더십이 인기를 끌고 있는 원인에 대해 정치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세종의 리더십은 우리 함께 가자는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내가 해봤다. 그러니까 나를 따라와라.”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또 한 정치평론가는 “2007년 대선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를 찍었는데, 결과는 실망이었다”면서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분석했다.
▶MB정권 비판 직설어법 줄이어…윤여준 전 장관 “MB노믹스는 실패”=600년 전 왕의 후광을 빌려와 현 정치의 우매함을 깨우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보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따끔한 충고와 앞날을 제시하는 정치서적도 쏟아진다. 앞서 ‘진보집권플랜’ ‘닥치고 정치’ ‘나는 꼼수다 뒷담화’ 등 진보진영에서 내놓은, 현 정치권에 대한 직설 비판서들이 이 같은 물꼬를 텄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세 전직 대통령(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보좌한 경험이 있는 윤여준 전 장관은 살아있는 경험을 토대로 전ㆍ현직 대통령들을 평가하고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대통령의 자격’을 풀어냈다.
저서 ‘대통령의 자격’에서 윤 전 장관은 통치 경륜, 국정운영기술 등으로 번역되는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라는 관점에서 대통령의 덕목을 정리했다. 윤 전 장관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들은 야망만 키우고 자질은 안 키웠다. 대통령이 되는 데까지만 온힘을 다하지,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기 때문에 들어와서 망가지는 일이 반복됐다”며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1년을 보니 나머지 상황은 보나마나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것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품 있는 언어구사를 꼽았다. 민주정치의 근간을 말 또는 소통이라고 보고, “지도자가 되려면 말은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높은 품격과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이 ‘한 마리의 연어’를 자칭하는 ‘코미디 정치’를 꼬집으며, 원칙 없이 움직이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에 대한 식견 또한 지도자의 전문성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국가경제는 기업 경제와 너무 다른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안목과 능력이 중요하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정책 간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新정치세력에 대한 갈망…안철수 관련 책도 ‘불티’=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안철수를 주제로 한 책들도 쏟아진다. 최근 두 달 사이 출간된 책만 해도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10.21 출간), ‘안철수 대통령’(9.15), ‘안철수의 강심장과 박근혜 DNA’(11.15),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10. 5), ‘안철수의 착한 성공’ (10. 25), ‘서른, 안철수처럼’(10.15), ‘안철수는 바람개비’(10.18) 등 7권에 달한다.
이처럼 출판계가 들썩일 정도로 정치 리더십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둔)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막혀있던 언로(言路)가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내년 1월 교육, 빈부격차 등 우리 사회의 묵직한 주제를 담은 에세이 출판을 기획하고 있어 정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안 원장과 함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도 운명에 이어 23일 ‘문재인ㆍ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출간한다. 문 이사장은 이 책에서 참여정부 시절 검찰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고 검찰개혁을 국가적ㆍ사회적 어젠다로 제시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8년에 아고라 같은 공간이 유명무실화되면서, 그동안 막혀있던 언로가 최근에는 나꼼수와 트위터, 그리고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다시 민심이 반영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민선ㆍ양대근 기자/bonjod@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