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인정사정 볼 것 없다 (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찌개가 끓고 있는 주방 천정에 파리가 어떻게 달라붙어 있는 줄 아는가? 바로 정신력 때문이다. 정신 줄을 놓으면 끓는 찌개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단단히 천정바닥을 움켜쥐고 있을 거란 얘기다. 믿거나 말거나….
유민 회장이 내린 명령은 아들 유호성의 정신력을 천정의 파리만큼이나 높이기 위한 얼차려와 다름없었다. 하루에 20킬로미터씩 걷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새벽 4시, 동녘이 트기도 전에 유도 4단이 그를 깨우면 어느 틈에 특공무술 3단이 날계란 두 알을 접시에 받쳐서 유호성의 코앞에 들이밀곤 했다.
“도련님, 날계란 훌훌 깨 드시고 운동하러 나가십시다. 강인한 체력은 모든 운동경기의 기본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차가 질주할 때에 느끼게 되는 G포스의 압력을 이기려면 아령을 하루에 천 번씩은 해야 합니다.”
소위 감시단의 일원인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의 완력에 못 이겨 복날 개 끌려가듯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가면 프레스용 벤치와 역기, 아령 따위가 어슴푸레한 달빛을 받아 번쩍이고 있었다.
“G포스의 압력? 그건 F1머신을 몰 때나 느끼게 되는 거라고요. 훈련을 시켜도 뭘 제대로 알고 시켜야지요.”
원래 G포스란 빠른 속도의 물체를 타고 달릴 때에 원심력에 의해 받게 되는 중력가속도를 의미한다. 놀이공원의 악명 높은 롤러코스터가 2G 정도의 압력에 이르는데, 그 정도만 해도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하얗게 질리게 된다. 만약 요실금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체면 불구하고 명품 팬티에 오줌을 지릴 수도 있을 것이다.
3.5G에 이르면 일반인들은 모두 기절한다. 그러나 시속 300km 속도로 달리는 F1카의 경우엔 최대 4G에 이르는 압력을 받기도 한다. 그 경우에 핸들을 조작하는 데에만 20kg 무게의 아령을 손목에 걸고 있는 것과 흡사한 힘을 느끼게 된다. 일반 상용차를 개조해서 달리는 랠리의 경우, 그 정도에는 못 미치더라도 G포스를 집중적으로 견디기 위해 목이나 팔 근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린 내막을 잘 모릅니다. 우린 다만 회장님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고요. 회장님께서 이 매뉴얼을 보내셨단 말입니다. 이 매뉴얼에 나온 대로 철저히 훈련을 시키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잠시 매뉴얼을 훑어 본 유호성은 제풀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 기상, 아령과 역기를 드는 것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해서 아침식사 후엔 곧바로 20km 코스답사, 점심식사 후엔 무려 두 시간동안 뜨거운 사우나에서 버티기 훈련, 그리고는 저녁까지 드라이빙 이론과 영어 회화, 저녁식사 후에는 보니트를 연 채로 차 밑바닥에 드러누워 엔진소리를 감지하는 훈련까지 그 일정이 살인적이기 때문이었다.
“이 빡빡한 일정을 지키라고요? 이러다가 제 명에 죽을 수나 있을까?”
“G포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헤비레그 증후군에 걸린답니다. 경기 후에 피가 하체로 쏠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네요. 간혹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턱 근육이 풀어져서 물도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 증상을 예방하려면 매뉴얼대로 훈련해야 한답니다. 이상 모두가 회장님의 말씀입니다.” 유호성은 ‘하느님 맙소사’를 연발했다. 랠리경기가 생체리듬까지 조절해가며 강훈련을 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경기인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어머니 신희영의 뜻에 따라 골프선수로 나설 것을… 이제와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른 건 모두 참겠지만… 사우나에서 버티는 훈련은 절대로 못해요. 작은 모래시계가 뒤집어 지는 시간이 3분 정도 되나? 그 동안에도 질식해서 죽을 것 같은데 무려 두 시간이나 사우나에 처박혀 있으라고요? 나를 삶아먹으려고?”
“사막을 달리는 동안 운전석의 온도가 무려 50도에 이른답니다. 그 온도에서 며칠을 달리려면 미리 훈련 하셔야죠. 까짓 사우나에서 버티는 것쯤이야 새발의 피 아닐까요?”
유호성은 주눅이 든 채로 매뉴얼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매뉴얼 상에는 그토록 혹독한 훈련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운전대를 잡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드라이빙 포지션은 시트로부터 어깨가 뜨지 않게 2시 위치를 잡는다’로 시작되는 기초 편에 도달하는 데에만 아직도 한 달이란 세월이 남아 있었으니… 명 짧은 놈은 지레 죽을 판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