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날개에 숨긴 칼 (5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맞은편 출입구로 들어서는 유민 회장은 자세히 보니 썬글라스 외에도 숱이 무성한 가발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왜 그런 꼴로 오토싸롱에 나타났냐고? 그야 현성애와 팔짱을 끼고 다니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 삼학도 갓바위 아래에서 그녀의 희생정신에 감격한 이래로 유민 회장은 현성애만 보면 어화 둥둥 내사랑!을 외치곤 했다는 말이다.
“저 차 좀 보세요. 요즘엔 친환경 차가 대세거든요? 국내 그린카 시대를 선도할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 카예요. 그리고 저 차는요, 미래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쏘울 하이브리드와 씨드 하이브리드예요. 그리고 저쪽에 있는 차는 한 번 충전으로 633km를 주행할 수 있는 모하비 수소연료전지 차고요…”
“어이그, 자동차가 뭐 그리 복잡해? 그냥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거지 하이브리드는 뭐고 수소연료전지는 또 뭐야?”
“세상이 점점 바뀌어 간다는 말이지요.”
“세상이야 바뀌든 말든… 내 목표는 분명해요. 아들 녀석이 5대륙 관통 랠리경기에 끌고 나가서 1등할 수 있는 차를 찍어보라고.”
유민 회장은 사실 자동차에 별 관심도 없었다. 5대륙 관통 랠리 경기도 높으신 어른들의 뜻에 따라 어쩔 수없이 치르게 된 것이지 언제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나?
“님은 품어야 맛이고, 자동차는 달려야 맛이지. 잘 달리면 장땡인 게야. 무슨 얼어 죽을 친환경은…”
“맞아요, 회장님. 제 생각도 그래요. 랠리에 직접 출전할 아드님 생각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언젠가 얻어들은 정보인데요, 아드님은 신형 마세라티를 타고 출전할 생각인가 봐요.”
“마세라티? 그게 자동차 이름예요?”
“네, 검은 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진 차예요.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회장님.”
“삼학도 갓바위 아래에서 둘이 약속했잖아요? 아들 녀석이 탈 자동차는 현양이 고르기로… 그러니 호성이 녀석 의견은 묵살하고 현 양 마음대로 추천해 보세요.”
“정말이죠? 고마워요, 회장님. 아무래도 제 생각엔 재규어 XKR이 어떨까 싶어요. 청춘의 피를 끓게 하는 차! 4.200cc 수퍼차저 엔진에서 무려 420마력의 힘이 나오고요, 수퍼차저를 과시하는 후드와 보닛의 방출구, 그물망 그릴, 크롬도금 된 듀얼 머플러도 멋지거든요? 가격도 2억 원에 못 미치고요 무엇보다 멋진 건 차체가 알미늄으로 만들어져서 무척 가볍다는 거예요.”
“허, 참 어렵군. 나야 뭐 자동차라면 벤츠나 BMW 밖엔 몰라요. 아니지… 곰곰이 생각하니 나도 꽤 유식하구먼. 크라이슬러, 볼보, 렉서스, 사브, 랜드로버… 어쨌거나 현 양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를 고르세요. 방금 뭐가 좋다고 했더라? 청춘의 피를 끓게 하는 차? 참 멋진 말이요.”
“고마워요, 회장님. 지금 저는 아드님 경주용 차량으로 재규어 XKR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고하고 결재 받는 중이예요. 아드님이 찬성할지는 모르지만.”
“그 녀석 의향이야 아무래도 좋소. 상관없다고.”
결국 현성애는 유민 회장의 재가를 받아낸 셈이었다. 그녀가 유호성의 랠리 경주차로 재규어 XKR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하나, 성능이 뛰어난 알미늄 차란 사실 때문이었다. 유호성은 성격이 진득하지 못하고 매사에 깝죽대는 편이었으므로 상대와의 경쟁에서 극한 대치상황에 이르면 오버할 것이 분명했다.
자동차 경주에서 오버하면? 그만큼 위험요소가 배가되는 법. 그녀는 유호성이 랠리 경주에서 오버하길 학수고대하는 중이었다. 시속 200km 수준으로 달리다가 오버하면 자칫 전복되기 쉬운 것. 전복… 그야말로 현성애가 복수하려는 마지막 단계 아니겠는가.
“차량 성능이 좋은데 차체도 가벼우니 얼마나 날렵할까요? 그런 차를 몰아야 랠리에서 아드님이 우승 하겠죠?”
복수의 꿈이 서서히 현실로 드러나자 그녀는 제풀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