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날려버린 건 11년 묵은 대한민국의 한(恨) 뿐만이 아니었다. 평창은 강한 열정과 치밀한 준비가 ‘스포츠 정치공학’을 능가했음을 보여줬다.
지금부터 8년전. ‘2010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할 2003년 7월의 제115차 IOC총회때에도 한국준비단에는 열정이 넘쳤다. 2002 월드컵때의 열광이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한풀 꺾인 터라, 벤쿠버, 잘츠부르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지명도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치밀하게 준비했다.
흔히 2000년이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준비 시점으로 알고 있지만 강원도는 최각규 지사시절인 1995년 이미 검토작업을 시작했다. ‘프라하 결전’의 준비작업은 1997~1998년 당시 행정부지사이던 김진선 현 특임대사가 최 지사의 지시에 따라 나가노 올림픽 준비 및 실행과정에 대한 정밀 분석을 벌이기도 했던 점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도전 초기,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도민 90%이상, 국민 80%이상 유치 열망을 등에 업고 파워포인트와 영상물외에 당시만해도 PT에 잘 쓰지 않던 멀티 슬라이드, 전통 춤과 북 공연 등 몇 가지 퍼포먼스를 더했다. 이번 2018 올림픽 유치성공의 비결중 하나였던 ‘선수 중심의 올림픽 운영’은 그때에도 있었다. 동계스포츠의 아시아 확산, 분단지역 평화정착도 주요 키워드에 포함시켰다. 당시 IOC 실사단과 위원들은 “평창의 눈도 하얗다”는 말로 평창을 일거에 밴쿠버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계의 파벌과 지역주의, 막후거래가 평창의 발목을 잡았다.
유럽과 북미가 개최지를 7대3으로 양분하고, 끼워넣기로 일본에게 두차례 불하했던 동계올림픽의 ‘스포츠권력’은 다른 대륙 국가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인맥과 파벌은 검은 거래를 낳고, 지역주의는 스포츠 강대국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변방 나라 위원들은 강대국에 줄서기 하느라 영혼을 잃어야 했다.
고질적인 동계스포츠권력의 난맥상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곪아 터졌다. 미국 솔트레이크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개최지로 선정되기 위해 기금 100만달러 이상을 쏟아부어 IOC 위원 24명에게 자녀학비, 뇌물, 휴가비, 접대비, 선물비로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로비’는 인정되었고, IOC는 유치활동과정에서 투표권을 가진 위원의 접촉금지조항을 두게됐다.
2003년 프라하회의에서 금품 로비의혹은 없었지만, 지역주의와 파벌이 판을 쳤고, 국내 인사의 올림픽 유치 반대로비 의혹이 평창에 상처를 안기고 말았다. 평창의 열정은 1차 투표에서 51표를 얻어 2위 벤쿠버(40)를 11표 차의 압도적 우위로 물리쳤다. 잘츠부르크는 16표에 그쳤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에 갔던 유럽표가 거의 다 벤쿠버로 쏠리면서 53대56으로 분패하고 말았다. 유럽과 북미가 공생하며 양분하던 철옹성을 내주지 않겠다는 속내가 표심으로 드러난 것이다.
IOC부위원장 자리를 노리던 김운용 위원의 ‘평창 투표 방해’ 의혹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115차 IOC총회가 열린 2003년 7월1일 프라하 힐튼호텔 로비에는 ‘밴쿠버는 모든 점에서 앞서 있으며 평창은 20표 이상의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라는 기사가 실린 독일의 격주간지 스포르트 인테른 수천부가 뿌려졌다. 김 위원이 이 잡지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터이고 유치활동에 진력하는 우리의 스태프와 김위원이 현지에서 불협화음 보였다는 정황 때문에 평창유치 방해의 심증은 굳어갔다. 한 나라에 두가지 선물(올림픽유치, 부위원장 선출)을 모두 주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김 위원이 다른나라 동료 위원들을 만나면서 국익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안 돼도 낙담할 것은 없어. 2014년에는 분명히 되리라는 게 IOC 내의 분위기야”라는 투표당일 김 위원의 발언이 알려지고, 때마침 김 위원이 부위원장에 당선되면서, 평창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충격을 뒤로한채, 어렵게 어렵게 꺼낸 ‘3수’선언에 국민들은 다시 평창에 힘을 실었다. 2014년 올림픽을 향한 평창의 준비상황은 진일보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섰고, 감성보다는 실용을 앞세웠다.
2007년 7월 콰테말라시티에서 열린 제119차 IOC총회에서 평창은 줄곳 경쟁 도시에 우세를 보였다. 1차투표에서 평창은 36표를 얻어, 러시아 소치(34표), 잘츠부르크(25표)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역주의와 줄세우기, 막후로비가 평창의 앞길을 가로막고 말았다. 최종결과는 평창 47, 소치 51표.
잘츠부르크를 지지했던 표가 대거 소치로 이동한 것이다. 아울러 동계스포츠가 발달하지 않아 큰 이해관계가 없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부동표는 석유자본을 앞세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줄세우기를 하면서 소치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유치위 관계자는 “유럽의 지역주의 때문에 졌다. 1차에서 잘츠부르크를 찍었던 표 중 유럽 등 14표가 소치로 이동했다. 1차에선 투표권이 없다가 2차투표에서 투표권이 부여된 위원 3명 즉, 오스트리아 위원과 잘츠부르크가 유치할 경우 경기장을 제공하기로 했던 독일 위원 2명이 소치편을 들었다”고 분석했다.
푸틴이 당시 유럽 위원들은 상대로 “1차는 잘츠부르크에, 2차는 소치를 밀어달라”고 말했던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국제 거물 정치지도자로서의 파워를 과시하면서 약소국 위원들을 장악했던 것으로 외신은 분석했다.
심지어 벨기에 출신 자크로게 위원장이 투표 며칠전 푸틴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면서 만년필을 선물로 준 사실도 평창으로 쏠리던 표심이 러시아로 옮겨가는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소치 올림픽시설 건설법안에 푸틴대통령이 서명하는 뜻으로 만년필을 건넸으며, 이는 ‘IOC위원장이 소치를 민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각본있는 드라마’, 남아공 더반에서 이룩한 평창의 성공은 국제스포츠 폴리틱스(politics), 대륙주의(지역주의), 줄 세우기, 정치에 예속된 스포츠, 인맥과 파벌, 검은 거래 등 그간 동계스포츠계에 남아있던 난맥상을 날려버렸다.
더 잘 짜여진 청사진, 선수 중심의 대회운영,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성의를 보인점, 이건희-조양호 회장, 박용성 위원의 집요한 설득, ‘국보소녀’ 김연아의 열정, ‘재림 여신’ 나승연의 전달력, 문대성의 지구촌 발품 팔기, 김진선의 집념, 최문순의 탈(脫)정파적 행보 등은 유럽표의 과반수를 비롯해 5대양 6대주에서 고르게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다.
평창의 승리는 기존의 부조리를 날려버린 국제 동계스포츠계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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