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날개에 숨긴 칼 (1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절도능금일미’

멋진 말 같지만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훔쳐 먹는 사과가 맛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숨겨진 본능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적절한 말임에는 분명하다. 천하의 재벌 회장 유민도 책상 밑에 숨겨놓은 능금 한 알을 훔쳐 먹기 위해 본능적으로 침을 흘리고 있는 꼴이 가관이었다.

“회장님, 그만! 저 좀 내보내주세요. 불안하잖아요.”

“걱정 말아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면 되지. 내 말에 거역하는 사람은 마누라밖엔 없어. 하지만 그 사람이야 지금 하와이에 있지 않은가.”

“비서실 직원들이 의심하면 어떡해요?”

“내 이미 비서실 직원들에게 모두 심부름을 시켰어. 두어 시간이나 지나야 들어온다고.”

“전화 오면 어떡해요?”

“내가 직접 받으면 되지.”

“그러면 우리 조용하게 대화만 해요. 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발뺌하겠다고?” 유민 회장은 들고 있던 볼펜 끝으로 자기의 지겟작대기를 톡톡 치며 대답했다. 결자해지, 일을 벌인 사람이 끝맺음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한가. 회장 집무실에서 끝맺음을 하라니… 이런 경우의 끝맺음은 과연 어느 단계를 일컫는 것일까?

“알았어요. 하지만 불안해요, 정말.”

“스릴이 넘쳐야 신나지. 내 나이쯤 되면 무미건조한 것엔 아무런 흥이 없어져.”

그녀는 벼랑 끝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짱도 생겨났다. 누구에게라도 들키게 된다면 오히려 해결을 볼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영국 귀족인 찰스 왕세자와 평민 출신의 다이애나가 사랑했을 때, 일차적으로 신분상승 효과를 본 쪽은 다이애나였다. 회장과 말단 여직원이 불륜에 휘말리게 될 경우도 결국엔 마찬가지. 더구나 본 부인과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에는 뜻하지 않은 횡재를 거머쥘 수도 있다. 본 부인을 내치고 새 마누라가 되는 것도 찬란한 복수 아니겠는가.

“아드님 호성 군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지불을 막아주세요. 앞으로는 호성 군의 씀씀이를 제가 조절할 거예요.”

“그거 좋지. 그렇지 않아도 그 녀석에게 너무 많은 돈이 새 나가고 있어.”

“내친 김에 저에게도 카드 한 장 발급해주세요. 한도는 낮게 정해도 좋아요.”

“그래, 그래. 자네에게 직접 용돈을 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야.”

사실 마음이 불안하긴 유민회장일지언정 다를 바 없었다. 서로 간에 불안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흥정은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현성애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미 유호성을 투입한 랠리사업의 경비지출 권한을 맡았건만 차제에 유호성의 용돈 줄마저 거머쥐겠다는 것이 그녀의 뜻이었다. 그리고 그 뜻은 책상 밑의 불안한 관계를 통해 쉽게 받아들여졌다.

다시 반복하지만 절도능금 일미! 남자들의 심리는 똑같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같다. 오히려 지위가 높고 평소의 행위가 고고할수록 스릴에 몸을 내어맡기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백악관에서 집무 중에 상열지사를 펼친 클린턴이 이미 세계적으로 그걸 증명한 바 있지 않은가.

“내가 믿는 사람은 자기밖엔 없어! 진심이야.”

드디어 자기라고 했나? 그녀는 책상 밑에 숨겨진 능금이 되어 상큼한 향기를 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민 회장은 그 향기에 취해 어! 어! 숨넘어가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