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날개에 숨긴 칼 (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밀착된 허벅지와 젖가슴 사이에 이제 막 뜨거운 열기가 번져 나오려 하던 차에 회장 집무실 앞으로 비실비실 누군가 걸어들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회장 집무실 앞에 도달하기만 하면 당당하게 걸어오던 자들도 모두 비실비실 게걸음을 걷곤 한다. 샐러리맨에게 회장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었다.
“현, 현양! 이리로 들어가요.”
유민 회장은 황급히 그녀를 책상 밑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회장 집무 책상은 길이가 2미터를 훌쩍 넘었고 폭도 만만치 않았으니 날씬한 여자 한 명쯤은 그 공간에서 살림을 차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혹시 법당 안에서 부처님의 시각으로 밖을 내다 본 적이 있는지. 법당 안에서 지그시 밖을 내다보노라면 4각 문틀 안에 갇힌 세상풍경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다. 중앙으로 탑이 세워져 있고 탑의 좌우로는 완만한 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은은한 풍경소리와 더불어 가끔 노을이 물들기라도 하면 그 찬연한 광채에 누구나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책상 아래 빈 공간으로 떠밀려 들어간 그녀는 법당 안에서 속세를 내다보는 기분이었다. 지긋이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4각 틀 안으로 드러나는 회장 집무실이 그렇게 허접할 수 없었다. 구겨져 주름진 바지의 사타구니로 잔뜩 성난 지겟작대기가 탑처럼 솟아 있었다. 그 위쪽으로 불룩한 배가 드러났고, 어깨 너머로는 호두나무로 짠 책장 윗 단이 드러나 보였는데 그 안의 책들은 생전 읽지도 않은 태를 내고 있었다.
“그만, 그 자리에 서서 보고해.”
유민 회장의 목소리가 제법 근엄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유민 회장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이 잔뜩 묻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혹 결제도장 찍을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어드리기 위해 회장 옆으로 바짝 다가서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그의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사모님께서 전해오신 내용입니다만… 저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서… 오늘 오전 중에 해결해야한다고…”
비실비실 걸어 들어오던 그 직원은 얼빵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말 머리는 있되 말 꼬리는 알아들을 재간이 없었다. 하긴 회장실 앞에서부터 벌벌 기어들어왔으니 뱃가죽에 말할 기운인들 남았을까.
“뭐야? 한솜이 학교에 찾아가서 교수를 만나고, 장기 결석계를 제출하라고? 이런 일은 자네가 해결하면 안 돼?”
“그… 그게, 학부형이 직접 찾아가야… 아니, 찾아가셔야…”
법당에서 밖을 내다볼 때는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려오더라고 했던가? 하지만 책상 밑에 쪼그린 채 숨죽이고 있는 현성애의 귀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직원의 거친 호흡소리만이 은은히 들려 올 뿐이었다. 아! 속세의 힘없는 인간들은 그래서 불쌍한 것이로구나.
그녀는 손가락으로 유민 회장의 허벅지를 가볍게 꼬집었다. 불쌍한 직원에게 대충 알았다 하고 어서 내보내라는 신호였다. 만약 그가 말을 듣지 않고 직원을 계속 다그친다면 바짝 고개 들고 있는 지겟작대기에 손톱알밤이라도 먹일 심사였는데…
“알았어. 그만 나가 봐.”
유민 회장의 이 한 마디로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이 사람아, 놀랬잖아. 소리라도 질렀으면 어쩌려고 허벅지를 꼬집어?”
직원이 되돌아 나가자마자 유민 회장은 책상 밑으로 손을 뻗어내려 그녀의 젖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왕에 자세가 잡혔으니 진도나 나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이혼 하신다는 말씀… 농담이지요?”
현성애는 즉시 본론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이혼을 할 것인지 아닌지, 차명계좌에는 얼마를 넣을 것인지를 권도일에게 밀고해야 했으므로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했다. 하지만 유민 회장은 묵묵부답, 오로지 젖먹이 아이처럼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기에만 분주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