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회> 죽음의 계곡 23
독일 라인 강 가의 협곡 로렐라이 언덕에는 인어 형상을 한 요정이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공을 유혹한다고 하던데…. 지금 한승우의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로렐라이의 노래처럼 감미로웠다. 그러나 그 유혹에 빠져들기만 하면 배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 것이다.
“브래지어… 호크가 풀렸다고요.”
한승우는 멍청하게 연못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고 그녀는 한승우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귓속말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로 하여금 브래지어 호크를 쉽게 잠글 수 있도록 상체를 외로 꼰 자세로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한 마디에 한승우가 넋을 잃은 상태였음은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든 해줘 봐요.”
그녀는 계속 울상을 지은 채로 말했다. 그러나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한승우였다. 좌단이냐? 아니면 우단이냐. 어느 쪽 어깨를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목숨이 오가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으므로.
이쯤에서 살짝 역사공부 좀 해보기로 한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외척들의 횡포는 고대 중국에서도 대단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죽은 뒤, 실질적으로 천하대권을 잡은 것은 여태후(呂太后)와 그의 일족이었다. 그러다가 BC 180년경에 여태후가 죽자 그동안 학대받던 유씨 일족이 세력을 만회하기 시작한다.
유씨 일족을 타도한 공신 주발(周勃)은 군대를 장악한 뒤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렇게 명령했다.
“여씨(呂氏)를 위해 충성할 사람들은 오른쪽 어깨를 벗어라. 유씨(劉氏)를 위해 충성을 바칠 사람은 왼쪽 어깨를 벗어라.”
‘우단(右袒)’은 오른쪽 어깨를 벗는 것이고, 좌단(左袒)은 왼쪽 어깨를 벗는 것인데 군사들은 모두 왼쪽어깨를 벗음으로써 유씨에의 충성을 맹세한 바 있다. 그건 그렇고….
‘브래지어 호크를 채우느냐, 마느냐….’
그야말로 우단을 해야 할지 좌단을 해야 할지 망설여질 따름이었다. 이런 경우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영화제목과도 같은 ‘놈, 놈, 놈’의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나쁜 놈, 비겁한 놈, 병신 같은 놈….
호젓한 곳에서 여자가 브래지어 호크를 채워달라고 부탁하는데 그걸 묵살한다면 보나마나 ‘비겁한 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브래지어 호크를 채우려면 손을 그녀의 옷 속으로 집어넣어야만 할 터. 등 뒤에 딱 붙어 앉아서 허리춤을 들춰내고 두 손을 그녀의 겨드랑이 속으로 밀어 넣다 보면….
웬만한 사내라면 하늘이 노래지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른 침을 삼키느라 목젖을 깔딱댈 것이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팔을 쭉 밀어 넣어 그녀의 젖가슴이라도 움켜쥐는 날엔 천하의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경우는 ‘병신 같은 놈’이다. 시키는 대로 순순히 브래지어 호크만 채워준다면? 그야말로 1박2일 동안 매 맞아도 싼 놈이 되고야 말 것이다.
“아! 어떡하지?”
“오빠, 빨리 어떻게든 해봐요. 난 이제 스무 살… 넘었거든요?”
어찌 보면 2차방정식 풀기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한승우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미 스무 살이 넘은 성년임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는 덜덜 떨기만 할 뿐,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라일락 향기가 원인이었다. 코끝으로 번져오는 그 향기에 취해서였을까? 한승우는 그녀의 허리춤을 들춰낸 후에, 두 손을 겨드랑이 옆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