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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 軍인권에 천착해온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의 삶…“우리 軍은 중증 자폐증상”

  • 기사입력 2014-07-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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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지웅ㆍ박준규 기자]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지난 16일 만난 임태훈(37) 군인권센터 소장. 그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바쁜 사람 중 하나다. 지난달 터진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이 그렇게 만들었다.

임 소장은 군 인권 전문가다. 지난 2005년 군인권센터를 만들어 군대 내 의문사나 각종 차별, 인권 유린에 대한 개선운동을 벌여왔다. 군대에서 일어난 억울한 일을 유가족들에게 진정 받고 상담을 하며, 흔쾌히 해결에 앞장서려는 그는‘군 인권 프런티어’로 불린다. 군대 속살(?)에 대해 그 만큼 아는 이도, 그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도 별로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언론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 받는 인물이다. GOP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인터뷰가 쇄도한다. 최근 일주일간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만 수십 건에 이른다. 그는 “한 방송에서 계속 스튜디오에 붙잡아 두려고 해서 다른 방송 스케줄을 펑크낸 일도 있다”고 했다. 실제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도 임 소장의 의견을 묻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전화는 줄을 이었다.

남들은 기피하던, 까발리지 않고 그냥 쉬쉬하던 ‘군 인권’에 대해 그는 왜 천착해 왔을까. 2시간 넘게 진행된 임 소장과의 인터뷰에선 그의 ‘고집스러운’ 삶의 발자취와 함께 ‘당당함’이 엿보였다. 그것이 그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군 인권에 대해 몰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네 멋대로 해라’엿던 학창시절=임 소장은 경북 영주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500원을 내고 버스에 탔다. 버스요금이 70원이었던 시절. 그런데 버스 안내양이 내준 거스름돈은 430원이 아닌 30원 뿐. 초등학생 임태훈은 당당히 “왜 30원 뿐이에요”라고 물었다. 안내양 ‘누나’는 자기는 100원을 받았다면서 무시했다. 임 소장은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돈을 찾아야 한다고 따졌다.

“내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어머니가 일단 날 학원엘 보내고 수소문 끝에 버스 안내양을 찾으셨어요. 결국 돈 돌려받고 사과도 받았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만 우리 어머니가 그날 사건 이후로 ‘네 고집 때문에 언젠가 사고 한번 칠 거다’라고 하셨죠.”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은 조용했다. 그의 고집스러움은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며 되살아났다. 당시 임 소장에겐 두발검사, 교복 착용은 모두 억압이고 불합리의 상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 그런 고집쟁이 소년이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군인권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던, 세상에 알려지기를 거부하며 쉬쉬해왔던 군대의 속살(?)을 파헤치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용기란 과연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다며.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성적 순으로 학생들을 우열반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게 비교육적이라 생각해서 선생님에게 따졌어요. 결국 우열반이 없어졌죠. 야간 자율학습에도 ‘무늬만 자율이지 실상 강제 아니냐’며 싸웠어요.”

왜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외어야 하는지 당최 이해하지 못했지만, 역사나 사회 과목 수업은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재수시절 ‘역사란 무엇인가’, ‘공산당선언’ 등을 읽으며 더욱 발전했다. ‘입시공부’ 보다는 ‘세상공부’에 힘썼던 1년간의 재수 끝에 95년 대구한의대학교 동양철학과에 들어갔다.

학과 공부는 꽤 열심이었다. 대학, 논어, 맹자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입학한 해에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한국을 찾았다. 대구 계명대에서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강연에 가서 화가 났어요. 교수들이 마치 저만 잘났다는 듯이 독일어로 떠들기만 하고 학부생들에겐 하버마스에게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 당시 교수님이 강연 후기를 과제로 내줬죠. ‘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질문 기회를 박탈당해 굉장히 불쾌하다’는 식으로 비판적인 글을 써냈죠.”

▶얼떨결에 ‘커밍아웃’=방학 때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 활동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 활동하며 진보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1997년 뜻이 맞는 대학생들과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 체계적인 인권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하려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님(현 서울시교육감) 권유로 성공회대 NGO 대학원에 응시했어요. 면접 들어가니 조 교수를 제외한 면접관들의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당시 면접관들은 내 입학을 반대했답니다. 혹시 내가 중간에 상처를 받고 나가버리면 어쩌나하는 우려 때문이었다는데, 조 교수님 설득 끝에 간신히 붙었던 거죠.”

임 소장은 당시만 해도 ‘커밍아웃’을 한 상태가 아니었다. 임 소장의 커밍아웃은 예고없이 이뤄졌다. 발단은 2000년 9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이었다.

“석천이 형하고는 친구사이 활동에서 알게 됐어요. 형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질러버린 거였죠. 난리가 났어요. 급하게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해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언론의 관심이 대단했어요. 문제는 그해 10월 KBS의 한 토론프로그램에 석천이 형이 나가야 되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된 거예요. 주변에서 나 밖에 나갈 사람이 없다고 떠밀어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표’이자 ‘홍석천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 집행위원’ 자격으로 나갔습니다. 생방송에서 떠들다 그만 커밍아웃 해버리게 된거죠. 부모님도 방송 보고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되셨어요.”

▶병역거부자, 군인권 전문가 되다?=임 소장은 자타공인 군인권 관련 최고 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전투복을 입어본 일이 없다. 2002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동성 간의 성행위를 형사처벌하는 조항(군형법 92조)이 살아있고, 동성애자를 등급 보류시키는 차별적 상황에서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국가가 나서서 동성애자인 나에게 ‘변태’, ‘3등 시민’이라는 낙인을 찍는데 군 복무 하면서 인권을 침해당하면 누가 보호해줄까 싶더라고요.”

커밍아웃에 이어 병역까지 거부한 아들을 보며 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군대 안 가겠다고 하니 오히려 어머니가 안심하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어릴적부터 ‘군대서 말대꾸하면 안된다. 따져도 안된다. 그러면 맞는다’라고 걱정하셨거든요. 그런 분이었으니 차라리 군대보다 구치소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거기서는 최소한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임 소장은 항소와 상고 끝에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004년 구치소에 들어가 2005년 6월에 가석방으로 나왔다. 그해 8ㆍ15 특사로 사면받았다.


“나와서 보니 군대 다녀온 남성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엄청 욕하더군요. 마침 국가인권위에서 ‘군인권 실태조사 연구 용역’을 준비하고 있었고 저도 공동연구자로 참여했지요. 육ㆍ해ㆍ공을 막론하고 부대 수십여 군데를 다니며 조사했어요.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연구단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하라’는 공문을 내려준 덕이었지요.”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에게 말 붙이고 얘기 들으면서 임 소장은 군대의 언어폭력, 구타 등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와 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끝에 2005년 10월 군인권센터 설립 준비에 착수했다.

▶“우리 군은 자폐증, 외부감시 적극 받아들여야”=임 소장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에서 군 당국이 가짜 임 병장을 내세운 것을 예로 들며 우리 군이 현재 ‘중증의 자폐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군은 사건이 발생하면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죠. 국민, 언론은 안중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문제가 커지는 겁니다.”

그는 지난해 논란 끝에 폐지된 연예병사 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연예병사 제도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위문공연은 큰 힘이 되거든요. 연예병사가 지난해 한참 논란이 됐을 때, 진짜 문제는 연예병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시스템이었어요. 그런데 하도 욕 먹고 골치 아프니까 연예병사 제도를 아예 없애버렸죠. 소탐대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군에 필요한 처방은 무엇일까. 임 소장은 거듭 ‘외부감시’를 강조한다.

“군이 철저하게 의회에 의한 문민통제를 받아야 해요. 문민 국방부장관 시대도 어서 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방부장관은 반드시 군인 출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잘못된 거예요. 오히려 민간인 일수록 군에 이해관계가 없기에 여러 사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독일식 국방감독관 제도’를 예로 들었다. “2차대전에 나치가 패하고 독일은 군대를 두지 않았죠. 이후 나라가 동ㆍ서로 갈리면서 60년대 말부터 군대를 다시 두자는 움직임이 생겨요. 기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니까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꼈죠. 그러니까 사민당이 국방 감독관 카드를 꺼내면서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회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맞섰어요. 기민당은 받아들였고 그렇게 독일 군대는 외부의 감시를 받게 됐어요. 감독관은 언제든지 원하는 부대에 출입해 필요한 자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군에서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것 같은지 물었다. 그런데 단호하다.

“반대하는 것 자체가 우리 군에 문제가 많다는 걸 방증하는 겁니다. 저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지웅ㆍ박준규 기자/plato@heraldcorp.com



▶임태훈이 걸어온 길

-1976 경상북도 영주 출생

-2013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석사

-1998∼2002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

-1999∼2001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1999∼2003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인권학교 및 인권캠프 강사

-2000∼2001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 집행위원

-2001∼2002 인터넷 국가검열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04∼2005 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로 선정

-2005 국가인권위원회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사업 공동연구원

-2006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 공동주최 [군 인권교육 연수과정] 운영기획 및 강사

-2006 국가인권위원회 [군 인권교육교재 개발] 연구사업 공동연구원

-2007 국방부,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 인권과 소속 법무관 대상 인권교육 강사

-2006∼2008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위원

-2006∼2008 법무부장관 위촉 교정시민옴부즈만

-2008∼2009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

-2008∼2010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전문상담위원

-2013 국가인권위원회 [군 의료체계 인권실태조사] 자문위원

-2009∼현재 군인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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