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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4 넘기지마라” “도서관은 안돼”‘...‘대자보’ 둘러싼 대학가 갈등
대자보 사전승인, A4 규격 등 요구하는 대학들
가톨릭대선 ‘학칙 개정하라’ 2000명 서명도
학생들 “대자보 게시 ‘실패’가 말이 되냐”
“철거 이후 대자보 붙지 않아…의사표현 위축”
인권위, “대자보 사전승인, 표현의 자유 침해”
지난달 말 가톨릭대학교 학내에 게시된 ‘SPC 불매운동’ 관련 대자보.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대자보를 둘러싼 대학가 곳곳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대자보를 게시하려는 학생들과, 이에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학교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29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은 학칙에 대자보 게시 전 사전승인 조항을 두고 있거나, 관련 조항이 없더라도 자체적인 사전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사전승인’, ‘A4 규격’ 요구…가톨릭대선 서명운동도

가톨릭대 양광모(21)씨는 계열사 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그룹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대자보를 지난달 말 게시했다. 그러나 당일 오전이 채 지나기 전에 철거됐다. 양씨는 “학칙에서 규정하는 A4용지가 아닌 A2용지에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연락을 학교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가톨릭대는 현행 학칙에서 대자보 등 홍보물 게시에 앞서 학교 측 승인을 받을 것과 함께 규격을 A4용지 크기로 제한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교내 환경오염 예방’이 취지다. 양씨는 “학교 승인을 미리 받으려 해도, 반려되는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비슷한 호소가 담긴 가톨릭대 학생의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A4 용지를 연달아 붙여 대자보 게시 승인을 받으려 해봤지만, 동일 게시판에 동일한 사람이 2장 이상을 붙일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가톨릭대에선 반발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가톨릭대 학생들은 지난 21일 학칙 개정 등을 요구하는 재학생 2000여명의 서명을 학교에 전달한 데 이어 지난 23일 촛불시위를 열었다. 재학생 이채환(24)씨는 “아직까지 학교에서 뚜렷한 답변을 주진 않았다”며 “대자보 게시에 실패하는 학생들을 보며 부당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교외단체 개입할 수 있어…반려한 적은 없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인 지난달 서울시 중구 동국대 중앙도서관 벽면에 게시된 대자보. [독자 제공]

동국대 재학생 이정은(19)씨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인 지난 10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중앙도서관 벽면에 부착하려다 제지를 받았다. 동국대 관계자는 “도서관은 워낙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공간이다보니 업무목적이 아니라면 다른 공간에 게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신당역 살인사건과 관련해 지난 9월말께 피해자를 추모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내에 게시했던 성균관대 이한이(21)씨 역시 이튿날 학교 측으로부터 사전승인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인신공격 등 극단적인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라며 “내용을 문제삼아 반려한 전례는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월 인하대 후문에 게시됐던 ‘학내 안전강화’를 요구하는 대자보 역시 ‘미승인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교내 단체가 아닌 교외 단체가 개입해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 학교 측 입장이다.

인권위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에도 시정은 미진

학생들 사이에선 이같은 ‘대자보 사전승인’ 절차 자체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하대 재학생 A씨는 “수년 만에 대자보가 게시됐는데, 학내 사건 비판 대자보가 철거된 이후 다시는 대자보가 붙지 않았다”며 “그 자체로 의사표현이 위축된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한이씨 역시 “대자보 내용을 학교에 보여줘야 한다는 자체로 ‘검사’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한편 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자보 게시 때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대학교 학칙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A대학교 학생회는 지난해 학교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을 게시했다가 학칙에 따라 무단수거를 당했다며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해당 대학에 학칙 개정을 권고하면서 “대학 내 학생회의 건전한 의견표명과 자치활동을 근본적으로 제한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정작 일선 대학들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선은 내규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인권위 권고에 따른 시정은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당장 시정 계획은 없다”고 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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