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창훈 기자]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참사가 발생했는데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정홍원 총리는 지난 27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총리인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께) 사죄 드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이제 더 이상 자리를 지킴으로써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11일만에 전격적으로 발표한 총리직 사퇴였다. 지난해 2월 26일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이후 426일 만이다.

총리직 사의표명을 재촉한 것은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정부 불신’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밤 중국과 파키스탄 순방을 마치고 막 귀국한 정 총리는 곧바로 세월호 침몰사고 대책본부가 꾸려진 진도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0시 30분께 정 총리가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가족들은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 당신 자식이 배 안에 있어도 이렇게 대응할 거야”며 애원하고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는 ‘물병세레’를 맞았다. 정 총리가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 책임 있게 일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건네는 일 뿐이었다.

사고 수습에 우왕좌왕하는 정부 안에서 총리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별로 없었다. 사고 초기 정 총리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장을 직접 맡아 현장을 지휘하겠다고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그 역할은 해양수산부 장관 몫이었다.

지난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 항의방문을 시도했을 때도 정 총리는 실종자 가족들과 3~4시간 대치하다가 돌아서는 일 이외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는 극도의 무기력함과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듯 박근혜정부에는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봤다. 국정운영의 2인자인 국무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정부에서 ‘책임총리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 후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사고 수습이 우선인데 사퇴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야당은 “무책임한 회피”라고까지 했다. 맞는 말 같지만, 아주 제한적인 역할만 주어져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로는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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