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제자 연락 오지만 부담돼 산행 택해 -스승의 날 의미 퇴색…교사들은 되레 우울한 날 -극성스런 학부모들이 주범…옛 의미 복원 시급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1. 교단 경력 19년차인 서울 P중학교 교사인 백모(48) 씨는 15일 새벽부터 등산배낭을 꾸렸다. 북한산에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이날은 스승의 날. 몇년전만 해도 제자들이 집으로 인사 오거나, 아니면 밖에서 제자들이 마련한 저녁도 먹기도 했지만, 올해는 산행을 택했다. 일부 제자로부터 연락도 왔고, 모임 초청 의사도 보내왔지만 다 거절했다. 대신 혼자의 산행을 택했다. 백 씨는 모처럼 산에 가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교사로서의 새로운 마음가짐 충전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혼자 북한산에 오른 것이다.

“예전의 스승의 날은 분명히 아닙니다. 정을 주고 받고 인사를 주고 받는 문화는 사라졌다고 봅니다. 제자를 이런때 만나는 것도 맘에 부담이 되고요. 괜히 오해받고 싶지 않아요. 교사 생활을 통해 제자들에 애정을 기울였다고 좀 자부하는데, 스승의 날의 초라해진 분위기엔 좀 씁쓸하기는 합니다.”

백 씨의 힘없는 고백이다.

스승의 날이 이처럼 의미가 위축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예우, 그리고 사랑을 담아 스승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매년 기념되고 있는 스승의 날. 이 날이 변질되고 왜곡되면서 정작 교단을 묵묵히 지켜온 교사들의 자존심에 상처까지 주고 있는 것이다.

경북 밀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권모(42ㆍ여) 교사 역시 그렇다. 권 교사는 이번 주말 집에만 틀여박혀 있을 생각이고, 실제 그렇게 했다. 권 씨는 사교성이 좋고, 모임도 몇개 되는데 주말은 ‘방콕’을 자임한 것이다.

권 씨는 “이웃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한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 교사라는 신분에 스승의 날 시기에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 오해를 받을까봐 그냥 혼자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며 “왜 스승의 날 안팎에 교사들이 위축되고, 심리적으로 불편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시기적으로 ‘김영란법’이 회자되고 있는 점도 스승의 날을 맞이한 교사들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수원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최모(40) 씨는 “친구들이 교사하면 그렇게 접대를 많이 받느냐고 물어온다”며 “요즘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는 교사가 몇명이나 있겠는가. 정말 주위에서 그런 사람 못봤다”며 “그런데도 교사 하면 촌지를 떠올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사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최 씨는 “정말 세상은 바뀌었고, 교단은 정말 ‘클린’해졌다”며 “요즘은 주변 시선이 싸늘해 정말 교사로서의 자긍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분위기가 이러자 스승의 날 기념식은 사라지고 있다. 올해는 일요일이 스승의 날이라 더욱 그렇기는 하지만, 매년 이같은 흐름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5일 서울 시내 일선 초ㆍ중ㆍ고교를 살펴본 결과, 최근 몇년간 전교생들이 참가하는 스승의 날 기념식을 건너뛰는 학교가 대다수였다.

일부 선생님들의 탓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실제 촌지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며 “그래도 자식 공부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일부 극성 부모들이 있어 전체적인 문화를 흐리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스승의 날은 교사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데 시대가 가면서 이 날의 의미가 왜곡되고 폄하된 측면이 많다”며 “뭔가 새로운 방향에서 스승의날을 기획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로선 뾰족한 답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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