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생생뉴스] 교황 요한 23세(1881∼1963)와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27일 성인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세계 평화 증진과 가톨릭교회를 보편교회로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들로 칭송받고 있다.

요한 23세는 이탈리아 북부의 시골마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뒤 제1차 세계대전 때 징집돼 이탈리아 군종 장교로 참전했고, 2차 대전 때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유대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제도의 경직성을 완화시키고 미-소 냉전 중재, 종교간 대화에 힘썼다. 1962년 교황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뽑혔고 ‘착한 교황’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456년 만의 비 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첫 슬라브인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 5개월 동안 104차례에 걸쳐 129개국을 방문해 ‘순례하는 회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는 외향적 성격과 인상적인 몸짓, 열정적인 연설로 가는 곳마다 숱한 화제를 뿌렸다. 방문 국가별 맞춤형 주제를 다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요한 23세는 77세의 고령에 교황에 올라 5년간 재위했고, 요한 바오로 2세는 58세에 즉위해 26년간 교황으로 활동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요한 23세는 위암과 싸우면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 인간과 공권력의 관계 등을 담은 회칙 ‘지상의 평화’를 남겼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해 가톨릭 교회를 크게 바꿔놓았다.

공의회를 계기로 라틴어로 봉헌되던 미사가 각 나라 말로 봉헌되기 시작했고, 미사 때 십자가상을 바라보고 섰던 신부들이 지금처럼 신자들을 향한 채 미사를 올리게 됐다.

1517년 종교개혁으로 분리된 개신교에 대한 멸시적 표현이었던 ‘열교’를 ‘분리된 형제’로 순화하고, 1054년 갈라져 나간 동방교회(동방정교회)와도 화해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중앙아메리카와 르완다, 중동 등 세계 곳곳의 분쟁과 갈등 해결을 위해 해당 지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외교적 노력을 벌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위원으로 일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 정신을 계승해 세계를 누비며 선교사 면모를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땅에 입을 맞추며 경의를 표하는 동작과 대규모 미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 청년 메흐메트 알리 아자에게 저격당했다. 다행히 총알이 심장을 1㎜ 차이로 비켜가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1983년 12월 교도소를 찾아가 범인을 면담한 뒤 “나는 이미 진정으로 그를 용서했다”면서 사면을 요청했다.

두 교황 모두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해 여의도광장에서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주례하고,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도 참석했다.

요한 23세는 1948년 파리 유엔총회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의 승인을 받을 때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로서 한국 대표단과 외국 대표단의 만남을 주선했다. 교황이던 1962년에는 한국천주교회에 정식 교계제도를 설정해 교황청 관할이던 대목구를 교구로 승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