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 ‘여가의 기술’展
글자들이 쉬고 있다. 텍스트로부터 해방된 수많은 글자들이 무작위로 뒤섞인채 부유하고 있다.
빔 프로젝터 영상으로 쏘아올린 한글 자음과 모음들이 밤하늘을 빽빽히 채운 별처럼 반짝인다. 유영하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사람들도 함께 쉰다. 푹신한 쇼파에 누워서 보는 노승관의 작품 ‘글자의 휴식’.
더러는 잠시나마 단잠을 자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역이라는 건축적 아름다움과 한글의 조형미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하는 ‘여가의 기술’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2011년 옛 서울역을 복원해 개관한 문화역서울 284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사진,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강연, 워크숍, 관객참여 행사를 한데 묶은 ‘여가의 기술-언젠가 느긋하게’전은 일상에 치여 제대로 쉴 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예술을 음미하며 차분하게 휴식할 기회를 주고 있다. 빡빡한 일상에서 잠시 해방돼, 문화예술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틈새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
역사에 들어서면 1층 중앙홀을 가득 메운 스피커들이 시선을 끈다. 김승영(51)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는 작가가 전국에서 수집한 600여개의 스피커를 쌓아올려 만든 작품으로, 사운드아티스트 오윤석과 공동작업했다. 50~60년된 판타지아, 쾨헬, 인켈, 에로이카 등 반가운 이름의 스피커들이 층층이 쌓여 웅장함을 더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때론 바람소리인듯, 때론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인듯 아득한 울림이 퍼져나온다.
세계적 작곡가 브라이언 이노가 극찬한 작곡가이자 사운드디자이너 카입(Kayipㆍ이우준)의 63m짜리 자연 파노라마 영상은 서측 복도를 가로로 길게 채웠다. 몽골의 사막과 협곡 등 광대한 자연풍광을 실사로 찍어 그래픽 작업한 이 작품은 명상적인 사운드와 결합해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ㆍ공간을 제공한다.
대합실 한쪽 공간을 실제 정원처럼 꾸민 이색 프로젝트 ‘늦은 오후 정원을 걷다’는 조경 전문가ㆍ디자이너 그룹으로 구성된 ‘정원사 친구들’이 공동 작업했다. 우유박스, 폐타이어 등의 재활용품을 이용해 화단으로 꾸미고 허브, 진달래를 아기자기하게 심어놓은 이 공간은 아파트단지 정원, 골목길 꽃밭같은 익숙함을 선사한다.
정원 한가운데 설치 된 미디어작업 ‘일필사의도’는 한국화가 한기창(48)의 작품이다. 목판에 스테이플을 일일이 찍어 표현한 꽃밭 위로 나비가 날아다니는 영상을 오버랩해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가 병원에서 수술할 때 스테이플로 상처를 봉합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작품은 명상과 치유의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7일까지 계속된다.
김아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