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채권추심원’, ‘전기검침원’에 퇴직금 지급하라 판결

-계약직이 독립적 사업자 권리 누렸으면 퇴직금 줄 필요없어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채권추심원, 제조업 도급제 사원, 전력 검침원, 외근 보험 모집인, 백화점 위탁 판매원,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오토바이 퀵서비스 배달원, 정수기 관리원…. 모두 정규직 채용이 아닌 위탁계약, 위임계약, 도급계약 등의 형태로 일을 하는 직종이다. 매월 고정급을 받지 않고 업무 실적만큼 성과급제로 받도록 계약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4대보험 혜택도, 퇴직금도 없다. 최근 이들이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 퇴직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형식적으로는 계약직이지만, 사실상 종속적 근로자로 일했으니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법원의 판단은 사건별로 제각각이다. 사실상 근로자로 일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는가 하면, 별도 계약에 따른 ‘프리랜서’로 봐야 하므로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병대)는 21일 신용정보회사와 추심업무 ‘위임계약’을 맺고 일정기간 일하다가 퇴직한 ‘채권추심원’ 3인에게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회사 측이 원고들에게 업무 목표설정에서부터 채권추심업무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업무의 모든 과정을 시스템에 입력하게 해 원고들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고 관리․감독했다”며 “겉으로는 위임계약처럼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임금을 목적으로 한 근로계약관계”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4년 12월엔 한전산업개발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전기검침원’에 대해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하므로 회사 측이 퇴직금을 줘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하급심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더 많다. 올 초 인천지방법원은 방과 후 교사 14명이 자신들이 근무했던 강사 파견회사를 상대로 한 퇴직금 소송에서 회사가 원고에게 9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회사 측은 방과 후 교사는 회사 소속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교사들이 사실상 회사의 감독을 받았고, 고정적인 기본급을 받는 등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 한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처럼 계약직 직원들이 기업을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벌여 이기는 경우 보다는 패소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이 계약직으로 일했지만 사실상 ‘종속적인 근로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계약직의 퇴직금 소송에서는 늘 피고용자가 ‘근무시간, 장소 등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는 종속적 관계였는지’, ‘독립 사업자로서 일을 했는지’, ‘고정적인 급여를 받았는지’, ‘4대 보험 가입 등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는지’ 등을 면밀히 따진다. 이 과정에서 원고 측이 정규직보다 출퇴근을 좀 더 자유롭게 했다거나, 근태 등 잘못을 했어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거나 하는 상황이 드러나면 종속적 근로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는 지난달 L중공업과 도급계약을 맺고 각각 2~4년 일하다 퇴직한 도급 계약직 2인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고가 더 높은 보수를 받기 위해 도급제 사원으로 전환했고, 실제 작업량에 따라 매월 보수액을 정규직보다 더 많이 받기도 했다”며 “작업시간 외에 다른 업체에 가서 노무를 제공하거나 별도로 종업원을 채용하는 도급 계약직도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회사에 종속돼 근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말 서울고등법원에서 백화점 판매원 26명이 자신이 일하던 의류업체를 낸 퇴직금 소송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본 수수료를 받았지만 직원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고, 회사가 판매원의 근태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근무 태도가 불량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 등 종속적인 근로관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