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초코파이'의 1996년 CF 캡처.(출처: 오리온 홈페이지)
'오리온 초코파이'의 1996년 CF 캡처.(출처: 오리온 홈페이지)

[헤럴드분당판교]'초코파이'는 정말 기구한 운명을 지닌 상표다. 1999 '오리온 초코파이'를 만드는 D주식회사는 '롯데 쵸코파이'를 만드는 L주식회사를 상대로 상표등록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냈다. '초코파이'라는 명칭은 D사의 것이므로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D사가 초코파이 스타일의 제품을 최초로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1917년부터 미국에서 조그만 원형의 빵에 마시멜로우를 넣고 초콜릿을 입힌 제품이 판매돼 왔다. 하지만 '초코파이'라는 명칭만큼은 D사의 창작물이었다. 법원도 D사 이전에 국내외에서 '초코파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이 없었다고 인정했다. '초코파이'는 곧 국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코리아리서치센터가 1994년 6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1% "초코파이”하면 오리온을 떠올린다고 대답했다. 이는 모든 상표권자들이 꿈꾸는 모습이 아닌가. 돈과 시간이 많다고 해서 특정 브랜드를 이 정도 수준까지 키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그런데 소송의 결과는 오리온의 충격적 패배였다. '초코파이'가 상표로서 식별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코파이'의 유명세가 문제였다. 유명해도 지나치게 유명해져상품의 보통 명칭 또는 관용하는 상표가 됨으로써 자타 상품의 식별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문제는 D사의 상표권 관리에 있었다. '초코파이'를 독자적인 상표로 키우기보다는 항상 '오리온'을 내세워 '오리온 초코파이'로만 사용했다. 그 결과 '초코파이'가 '오리온'과 함께 D사의 상표로서 각각 유명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초코파이'는 상품의 보통 명칭에 불과한데 D사의 제품인 '오리온 초코파이'가 맛이 좋아 인기가 높고 시장점유율도 커진 것인지 불분명해졌다. 게다가 D사는 1979년경부터 L사 등 경쟁업체들이 '초코파이'라는 표장을 상품명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 한번도 사용중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법원은 D사가 20여년에 걸쳐 '초코파이'를 상표로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만일 '초코파이'가 보통명칭이나 관용표장이 아니라 단순히 상품의 성질을 나타내는기술적 표장단계에 머물렀다면 좀 달랐을 것이다. ‘기술적 표장은 당장은 상표로 등록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유명해지면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해 상표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초코파이'는 그런 단계도 지나쳐 버렸다. D사가 독점적 사용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사이에 상표로서 식별력이 희석화되고 보통명칭 내지 관용표장이 돼 버린 것이다. 상표권의 세계는 정말 특이하다. 잡아놓은 고기에도 미끼를 줘야 할 때가 있다. 좋은 상표, 멋진 브랜드일수록 남들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시와 단속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이동구 변호사


jshw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