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골프가 그렇다. 출전 포기를 고려했던 예상 밖 선수가 덜컥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도 있고, 예상대로 우승을 눈앞에 둔 챔피언 후보가 후반에 전혀 딴 사람이 돼 무너질 수도 있다. ‘명인열전’ 마스터스 마지막날, 갤러리는 골프의 짜릿한 두 장면을 모두 만끽했다.
대니 윌렛(잉글랜드)이 2016년 첫 메이저 골프대회인 제80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내의 출산 때문에 대회 출전 자체를 고민했던 윌렛은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복덩이’ 아들 덕에 생각지도 못한 대박을 터뜨렸다. 반면 전반까지 4타를 줄이며 승승장구하던 조던 스피스(미국)는 악명높은 ‘아멘코너’에서 무너지며 마스터스 2연패 꿈을 날렸다.
윌렛은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열린 마스터스 최종일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내며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를 기록, 스피스와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이상 2언더파 286타)를 3타 차로 제치고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승 상금은 180만 달러(약 20억7600만원).
윌렛은 “아내가 28년 전 오늘 태어났고, 내 아들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났다. ‘운명’이라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미친 한 주였다”며 감격해 했다. 실제로 윌렛은 당초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4월 초에 잡혀 마스터스 포기를 고심했다. 하지만 아내는 예정일보다 이른 지난 1일 아들 자카리아 제임스를 순산했고 윌렛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스터스로 향했다. 윌렛은 지난해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해 공동 38위를 기록했고 메이저 최고 성적은 지난해 브리티시오픈 공동 6위였다. 유럽투어에서 통산 4승을 거둔 윌렛은 이번 대회서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 1.58개로 안정적인 퍼트 감각을 과시하며 조용히 타수를 줄여나갔다.
이날도 무결점 플레이를 펼치긴 했지만 역시 우승 도우미는 스피스였다. 디펜딩챔피언 스피스는 전반과 후반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해부터 마스터스 7라운드 연속 선두라는 새 기록을 작성하며 단독선두로 최종일을 맞은 스피스는 전반에 버디 5개, 보기 1개로 4타를 줄이며 2위 그룹을 5타 차로 제쳐 우승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하지만 후반 첫 홀부터 보기를 범하더니 기어코 ‘아멘코너’(11~13번홀)에서 발목이 잡혔다. 11번홀(파4)에서 또 타수를 잃으며 먹구름을 드리운 스피스는 12번홀(파3)에서 재앙을 맞았다.
티샷을 그린 앞 워터해저드에 빠뜨린 스피스는 1벌타를 받고 친 세번째 샷마저 뒤땅을 치면서 또다시 물에 빠뜨렸다. 다시 1벌타를 받고 친 다섯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로 보냈다. 간신히 여섯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렸고 1퍼트로 마무리했지만 무려 7타만에 홀아웃, 쿼드러플 보기를 적어냈다. 순식간에 단독선두에서 5위권으로 밀려난 스피스는 그러나 정신을 수습하고 13번홀(파5)과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낚으며 윌렛을 2타차로 압박했다. 특히 12번홀 ‘멘붕’ 상황에서도 15번홀 어려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는 모습에 갤러리들은 기립박수로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피스의 추격전은 그걸로 끝이었다. 16번홀(파3) 버디 퍼트에 실패하고 17번홀(파4)서도 타수를 잃으며 우승컵에서 멀어졌다.
스피스는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최악의 30분이었다. 앞으로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스피스는 지난해 우승자 자격으로 윌렛에게 그린재킷을 입혀주면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1오버파 289타 쳐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과 공동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매킬로이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기회를 내년으로 미뤘다. 대회 초반 선전했던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25)는 공동 17위(4오버파 292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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