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난 솔직히,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엄만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내가 1등만 하면 상관없어?”
체벌은 종종 그 ‘효과’가 나타날 때 정당성을 얻는다. 반면 ‘사랑의 매’ 없이 배우다 결국 뒷방에 눌러앉은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를 두들겨 패서라도 잡아 주는 스승이 있었더라면….’
맞아서라도 1등을 하느냐, 맞지 않고 4등에서 멈추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4등’(감독 정지우)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초등학교 수영 선수인 준호(유재상)는 ‘만년 4등’이다. 나가는 대회마다 ‘금은동’ 메달권이 손에 잡힐 듯 말 듯하다. 그래도 마냥 수영이 좋아 4등을 해도 경기가 끝나면 또래 친구들과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엄마 정애(이항나)는 ‘4등 공포증’에 걸렸다. 아들이 4등만 벗어날 수 있다면, 1등까지 할 수 있다면 무엇도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안 다니던 교회까지 따라가서 어렵사리 구한 코치 광수(박해준)에게 아들을 맡긴다. 아이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무섭지 않았다.
코치는 준호의 수영 실력을 본 후 재능을 눈치 챈다. 이때부터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다. 준호는 수영장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가혹한 체벌은 4등이던 준호를 1등과 0.02초 차이인 ‘거의 2등’으로 만들어 놓는다. 준호 엄마는 아들의 상처를 눈치 채지만, 첫 은메달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영화는 체벌이 대물림되는 이유를 담담히 그려낸다. 코치는 한때 촉망받은 국가대표였지만, 현재는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취미 수영을 가르치는 평범한 코치가 됐다. 그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보고도 다른 선수처럼 때리지 않고 특별대우해 준 국가대표 코치를 향한 분노다. 코치는 준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망치고 싶지? 그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 겪어보니 그렇더라.”
그렇게 맞은 준호도 어느새 똑같은 폭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자신의 수영 물품을 건드렸다며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맞을 짓을 했다”라며 “몇대 맞을래”라고 어른에게 배운 말을 똑같이 따라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영화 12번째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해피엔드’(1999), ‘은교’(2012)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제작비 6억원의 저예산으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정 감독은 영화 시사회에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몸안에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면서 “때리는 사람이 나쁜 놈이고 맞는 사람이 피해자인 구도로 폭력을 설명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는 또 “레인이 있는 수영장에는 경쟁이 있고 1등만 남는다”라면서 “그런데 레인을 벗겨 보니 꼭 목욕탕 같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더라”는 말도 남겼다.
준호가 레인이 걷어진 목욕탕 같은 수영장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다니며 유영하는 모습을 담은 수중촬영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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