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를 위해 이란에 도착했다고 가정하자. 테헤란행이 처음인 당신은 비행기 안에서 페르시아어 회화 표현을 외우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에 도착한 당신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사에게 요금을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벨리 나더레(Ghabeli nadare).” 어라, 페르시아어 회화책에 나와있는 숫자 표현이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거벨리 나더레.”

‘거벨리 나더레’는 직역하면 ‘이건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고, 의역하면 ‘괜찮아요, 아니에요’ 정도의 뜻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페르시아 특유의 빈말 문화인데, 이란인들은 이를 ‘터로프(Taarof)’라고 한다. 터로프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는 언어 습관이다. 이럴 때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베파르머인(Befarmayin)’이라고 말하면서 돈을 내미는 것이 좋다. 그제야 기사는 쭈뼛하며 요금을 말할테니 말이다.

‘베파르머인’은 대표적인 터로프 표현인데 고정된 뜻은 없다. 굳이 번역하자면 영어의 ‘Please’ 정도로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 응용해서 쓸 수 있다. 누군가가 무엇을 먹고 있을 때 곁을 지나가면 이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베파르머인’을 외친다. 다가와서 함께 먹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럴 때 ‘베파르머인’은 대부분 예의상 하는 빈말일 경우가 많다. 우리 역시 체면을 중시해서 비슷한 언어 습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란의 터로프 표현은 매우 다양하고 시적인 표현이 많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난 당신을 위해 희생할 거예요(고맙습니다).”, “당신은 내 눈동자 위에서 걸을 수 있어요(환영합니다).”, “당신 눈의 빛이 되고 싶어요(훌륭합니다).” 등이다.

페르시아의 터로프 습관은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과 연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 문화의 특성상 이란인들은 말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말 내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는 80%가 지시적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합리성을 중요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언어에 투영된 까닭이다. 반면 페르시아어의 80%는 암시적인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상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이란은 역사적으로 침략이 잦았다. 아랍, 투르크, 몽골 등 제국의 점령을 겪으면서 대립적인 현실을 피하고 싶은 위한 바람이 언어 습관에 투영된 것이다.

몇 해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정교한 감추기 예술’이라는 기사에서 이란의 터로프 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외교 테이블에서 이란인의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명확한 영어와 모호한 페르시아어의 대결에서 유리한 쪽은 아무래도 후자이다. 어디 외교 관계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무역 및 비즈니스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바이어를 만나서 가격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언어 습관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면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인의 모호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게임의 룰을 알면 경기는 재밌어지게 마련이다. 바이어의 터로프 표현을 듣고 더 높은 수준의 빈말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우리 기업의 이란시장 진출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베파르머인!

김욱진 코트라 테헤란무역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