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현대경제硏 연중기획…‘사회자본’ 확충해야 4만달러 가능하다-①현실과 과제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법질서 위반 행위 등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직ㆍ간접적으로 경제발전에도 큰 피해를 끼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뢰나 법ㆍ질서 등 무형(無形)가치들이 경제적으로도 고비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의 인프라로 ‘사회자본(社會資本ㆍ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이유다.
사회자본은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Hukuyama)의 저서 ‘트러스트(Trust)’를 통해 국내외에 소개됐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지속 발전을 위해선 경쟁 시스템과 사회 구성원의 신뢰가 뒷받침되는 이른바 ‘고(高)신뢰 사회’로의 도약이 불가피하다는 게 그 핵심이다. 사회적 신뢰와 1인당 국내총생산(GDP)와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선진국 진입과 사회자본 확충이 등식화됐다.
이에 따라 헤럴드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은 ‘사회자본 확충해야 4만달러 가능하다’는 주제의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로 3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좌승희 KDI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등 전문가 3인이 ‘한국의 사회자본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총론적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국민소득 4만달러 진입을 위해선 사회자본 확충이 필수적이란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먼저 송복 교수님께서 사회학 관점에서 총론적으로 화두를 열어주시지요.
▶송복 교수=아마도 이제는 경제학만 가지곤 경제발전이 힘들 겁니다. 사회자본의 개념은 이미 200년 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강조된 건데 최근 급격히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사회자본은 곧 도덕이고 신뢰입니다. 이성적이기보단 감성적 협력이고 정의이고 공정이자 형평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선 사회자본의 전통이 없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도덕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강조한 게 충(忠)과 효(孝) 사상인데, 이는 사회에 대한 게 아니라 나라와 임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로열티(Loyalty)’는 없고, 특정인에 대한 ‘로열티(Royalty)’만 있었던 겁니다. ▶현정택 부의장=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우리는 1990년대에 크게 성장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투입해 성장하기는 어려운 시대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적인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 사이에 사회자본이 구축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는 곤란합니다.
▶송 교수=조선시대는 그 시대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충과 효를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갑자기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사회이동성이 높아지다 보니까 공동체란 것을 성숙시킬 수 없었습니다. 도덕과 신뢰는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말이죠.
▶현 부의장=법질서가 확립된 서구 선진국의 GDP가 높습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규제개혁이나 경제발전 3개년 계획도 사회자본과 맥을 같이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특정층이 이권을 누리면서 경제적 제재를 받는 사람과 못 받는 사람이 나뉘어지는 건데 사회자본으로 시스템을 갖추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지죠. 1990년대에 나온 소설 중에 ‘완장’(윤흥길 저)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어줍잖은 사람에게 완장을 채움으로써 권력에 의한 감시에 길들여지게 됐죠. 하지만 이러면서 사회자본 형성이 어려워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부가 일일이 따라가면서 감시하는 게 아니라 사회자본을 잘 만들면 수많은 규제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면,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대표부를 신설하러 갔었는데, 거기 소속된 나라들은 부자의 나라를 떠나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존중의 나라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가입한 지 17~18년이 지났는데 정말로 그런 시스템이 정착됐느냐를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사회적 갈등을 치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센터 같은 걸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사회자=사회자본 개념에 있어서 중요 단어가 투명, 신뢰, 정의, 배려 등인데 우리나라에도 나름 이를 지키기 위한 역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좌승희 교수=조선사회는 국가가 국민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사회자본 얘기가 왜 나오느냐면 경제학의 노동, 자본, 기술을 백번 해 봐야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단 걸 알게 된 거죠. 그걸 넘어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안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송 교수=빵과 풍요만으론 살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를 다스릴 땐 머리만 쓰면 되지만,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써야 합니다. 더 성장하려면 통제나 효율도 필요하지만 창의와 혁신을 해야 하는데 이게 머리만 되는 게 아니고 가슴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터치(Hi-touch)가 있어야 하이테크(Hi-tech)가 나옵니다.
▶좌 교수=개인이나 조직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회제도 위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어떤 제도를 정착시키느냐가 경제발전의 관건입니다. 그동안 경제학에선 제도를 투명하게 정착시키면 거래비용이 내려가고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높아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봐 왔는데 크게 미흡합니다.
▶송 교수=그동안 우리 사회는 마음을 관대하게 갖고 말고 할 여유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방법은 인류 역사에서 공동체밖에 없었습니다. 공동체의 특징은 감시입니다. 나의 최고 감시자가 바로 나의 친구, 나의 아내입니다. 감시자가 있어서 우리가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현 부의장=경찰서 지구대에 가면 제일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은행원이나 교사라고 합니다. 경찰이 무서운 게 아니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ㆍ동료 감시)’가 무섭다는 얘깁니다.
▶좌 교수=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될 수 있다는 쪽으로 사회 통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이웃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발전친화적 사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회에서 나오는 법들은 모두 ‘남이 흥하면 내가 망한다’는 식입니다. 거래비용을 싹 없애는 장치가 바로 ‘기업’입니다. 기업은 사회가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란 사회의 신뢰가 떨어지고 거래가 잘 안 될 때 사람들을 끌어모아 신뢰를 쌓게 하는 장치이고, 이는 결국 사회자본을 축적하는 장치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업 규제정책을 보면 너무 정치화됐습니다. 정치권이 표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싸움 붙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만있어 주는 게 더 낮습니다. 한 마디로 경제정책의 정치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습니다.
-사회자=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도 기업 외에 개인과 일반국민 사회에서 사회자본을 축적할 대안이 없을까요.
▶송 교수=가능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의 모범적인 행동,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를 실행하는 사람을 언론에서 조명을 잘해 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득권자의 그 높은 지위, 부, 권력, 명예에 맞는 도덕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 기득권자는 도덕에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 어떤 경우에도 지탄받는 행동을 하지 않는 모범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했던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도록 언론 등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좌 교수=기업이 바로 답입니다. 근자에 기업에 무턱대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사회주의를 하자는 요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은 창발의 주체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경영의 태생적 본질입니다. 따라서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보다 내부적으로 그 기능을 하는 기업을 더 많이 생기게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사회적 책임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현 부의장=우리나라 교육에 토론문화를 정착시켜 시험도 맞고 틀리느냐 식이 아닌 에세이식으로 만들어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 소양을 키워주는 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작은 준법정신부터 실천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고, 개방과 공개를 통해 전체 사회시스템의 세부 부문에 대한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특히 입법ㆍ행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제고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또 정부는 정책 집행과 전달체계를 효율화해서 행정 시스템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또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통해 ‘완장의 통제’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 스스로가 지켜야할 것을 지키며 마음껏 활동하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은 발언내용 요약.
■송복 자본은 경제개념이다. 도덕이 20세기를 넘어서면서 경제발전의 중요 수단으로 재인식됐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촌으로 확산되면서 인간사회의 기본을 새로이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우리의 도덕 수준은 조선시대보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득하다. 압축성장에 의한 지나친 사회이동성이 공동체 형성을 어렵게 했다. 해답은 성숙한 공동체 사회다. 이를 위해선 지속적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서비스업을 키워야 도덕과 신뢰 수준이 높아진다.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창의와 혁신은 상상력과 체계적인 사고력이다. 기득권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문제다. 논어는 군자가 잘못 행동하면 일식ㆍ월식처럼 모든 사람들이 본다고 가르친다. 부와 권력, 명예를 가진 이들의 비도덕적 행동은 작은 연못에 큰 바위를 던져 넣는 것과 같다.
■현인택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정체돼 있다. 기술 및 경영 혁신, 사회적 갈등 완화 등을 통해 생산성의 질적 개선이 돌파구다. 재도약을 위해 패러다임 변화를 통한 경제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국가 경쟁력의 상승에 비해 사회자본 수준은 후진적이고 일부 글로벌 순위는 후퇴한다. 부정부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선진국보다 크다. 따라서 사회자본 확충을 통한 국가 차원의 다양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 또 법ㆍ질서 준수 등을 통한 사회신뢰도 제고와 함께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제거해야 한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갈등 해소 메커니즘을 제도화하고 갈등 예방 및 조정 역량을 갖춘 유능한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인ㆍ허가 제도를 통해 현대판 ‘완장’을 확대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정부 기능 효율화와 부처 간 장벽 타파로 행정비용을 축소시키는 것도 시급하다.
■좌승희 시장과 기업은 성과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들을 경제발전의 길로 나서게 하는 장치이다. 기업은 경제제도가 부실하고 사회자본 축적이 낮아 거래비용과 조직비용이 높은 사회를 바로 잡는 기능을 담당한다. 경제발전이란 경제구성원 간에 성공 노하우가 사회 전체에 전파됨으로써 성공하는 주체들이 커지는 걸 가리킨다. 경제발전은 결국 성공하는 이웃을 따라 배우는 과정이다.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흥한다’는 개념이 시너지 창출과 부의 창출의 기본 베이스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사회자본의 축적을 막는 정치화된 기업정책이 문제다. 특히 대기업의 규제정책은 선거철마다 조변석개(朝變夕改)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은 이미 신뢰를 상실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천은 정치권에 있다. 남보다 더 노력하고 더 성과를 내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사회자본 축적의 전제이다.
정리=서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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