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른들은 족보(族譜)에 유난히 예민했다. 내 부친도 예외가 아녔다. 술 한 잔 드신 날이면 어린 아들을 불러놓고 몇 대조 조상이 무슨 벼슬을 했는지 일깨워줬다. 뼈대 있는 집안임을 강조했다. 거기에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과거의 역사는 그런 점에서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불화(不和)다. 과거가 아무리 찬란했다 해도 현재의 삶이 지옥 같다면 그 어떤 과거의 영광도 현실의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
족보에 등장한 조상의 벼슬이 현실의 어려움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려는 노력마저 현재의 불행을 감추려는 정치적 음모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청소년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것이라 한다면, 이는 결국 현실인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면, 과거 그 어떤 자랑스러운 기억도 현실의 고통을 봉인할 수 없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헬(hell)’과 크게 다르지 않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율과 저출산율은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매년 10만 명당 29.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2위인 헝가리(19.6명)에 비해 거의 1.5배 수준이다.
저출산 문제도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노동환경 역시 최악이다. 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에 따르면 고용안정성, 노동시간, 소득분배, 남녀 임금격차 등 각종 노동지표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노동 상황이 지옥 같은 상황에 와 있음을 정부자료가 확인해 주고 있다.
육아와 교육, 주거문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마저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저출산대책이랍시고 이런저런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이런 정책이 효과를 보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육아는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해도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에 등이 휠 지경이다. 대학까지 보낸다고 해서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취업도 힘들고 절반 가량이 비정규직인 노동시장에서 안락한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젊은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대한민국이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점에 있다. 금수저와 금수레 담론이 일반화됐다. 어떤 능력을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 집 자식인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사회불평등, 빈부격차, 사교육비 등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잘 알고 있다. 부모가 얼마나 능력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누구 아이를 가지려 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쟁의 공정성이다. 미국 사회가 멕시코보다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게 아메리카 드림의 본질이었다. 이게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이다.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공정한 경쟁의 가능성은 점차 사라지고 출신이 중요해지는 봉건사회로 퇴행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역사의 자부심 운운하는 것 자체 사치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중요한 건 경쟁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 동일 노동 임금만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보상이 공정하지 않은데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공정성을 회복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때 반듯한 대한민국은 가능하다. 이제 복지를 넘어 공정성을 외쳐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