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안성) 기자]지난 1961년 5ㆍ16군사정변 직후 미국은 집권세력을 인정하기 않고 제공하던 원조를 중단했다.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같은 처지에 있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1억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파견됐던 간호사와 광부들의 봉급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몇년 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의 칼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 초대로 독일을 방문했다. 서독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ㆍ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미터 지하에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이방인의 굳어버린 시신을 닦으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어린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국민들이 생각나 박 전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유를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열망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낙농발전에 선도역할을 할 시범목장 건립을 지원 요청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독낙농시범목장’이었다.
경기 안성시 공도읍에 위치한 안성팜랜드의 역사관에는 이같은 내용의 영상물이 나와 방문객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안성팜랜드의 옛 이름은 한독낙농시범목장이다. ‘한독’은 한국과 독일을 뜻하는 것으로, 1969년 박 전 대통령이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목장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계기로, 새삼 세월의 인연을 느끼게 해주는 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 낙농업의 효시, 한독목장=축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던 1960년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선진국처럼 충분한 우유를 먹이고 싶었던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서독 방문 당시 한국 낙농발전을 선도할 시범목장 건립을 요청했다.
한국으로부터 간호사와 광원 인력을 조달받은 서독 측은 이를 받아들여 정부가 마련한 부지에 건물과 트랙터 등 기계장비, 젖소 200여마리를 지원했다.
1969년, 이렇게 탄생한 한독목장은 축산농가에 집중적으로 낙농교육을 하는 등 국내 낙농업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에는 낙농 뿐 아니라 한우, 돼지, 닭 등 축종별 시범목장으로 변신해 농가에 축산기술을 전수했다. 1990~2000년대에는 한우와 유기농 축산 등 고부가가치 축산 기술을 가르쳤다. 넓은 초지에서 나오는 풀로 유기배합사료를 만들어 자체 공급하기도 했다.
한독목장에서 23년간 근무하다 2012년 퇴직한 성낙일(60) 씨는 “1980~90년대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낙농 교육을 받아 무수히 많은 낙농가가 배출됐다”며 “사실상 이곳에서 국내 처음으로 낙농이 시작돼 경기도 등 다른 지역으로 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독목장이 국내 낙농업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시민들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 지난 23일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안성팜랜드를 방문한 김항영(66ㆍ경북 구미시) 씨는 “6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는 우유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분말우유를 끓여주면 한컵씩 먹는 게 전부였다”며 “오늘 안성팜랜드에 와서야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한독목장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박 전 대통령이 정말 훌륭한 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팜랜드 관계자는 “70대 어르신들의 경우, 한독목장 역사와 박 전 대통령의 활동상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는 대부분 눈물을 비치곤 한다”며 “아마 못살았던 옛날과 경제발전 성과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국내 최대 체험형 놀이목장, 안성팜랜드=지난 40여년간 한국 축산업을 선도해온 한독목장은 이후 변화를 거듭해 2012년 4월21일 ‘안성팜랜드’로 이름을 바꾸고 축산 테마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드넓은 초지와 한가로이 서있는 미루나무, 독일식 건물 등이 이국적인 풍치를 자아내 KBS ‘공주의 남자’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체 129만㎡(39만평) 규모의 대지에는 농축산 체험공간, 실내 농축산전용행사장, 농축산물 판매상점, 승마장 등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들은 방목돼 길러지는 소와 말, 염소, 토끼 등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다.
안성팜랜드 다른 관계자는 “젖짜기 체험을 하거나 마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등 팜랜드에는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있다”며 “지난해 하루 최대 방문객은 1만여명에 달하는 등 체험형 놀이목장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최근 봄을 맞아 방문객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날 우유는 넘치고 넘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공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명감을 갖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시절엔 꿈도 못꿨던 우유를 아이들에게 마음껏 먹이고 싶다던 박 전 대통령의 소망과 꿈을 안성팜랜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mss@heraldcorp.com
▶안성팜랜드 연혁
1964년 고(故) 박정희 전(前) 대통령 독일연방공화국(서독) 방문 시범목장 건립 지원 요청
1969년 한독 시범 목장 설립
1987년 축종별 시범 목장
2001년 한우 시범 사육장
2003년 유기축산 시범 사육장
2008년 유기사료 생산 공급
2009년 시범 승마센터 개장
2012년 안성팜랜드 정식개장
2013년 매직아트홀 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