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ㆍ한희라 기자]‘신용카드 보유비율 89%, 현금사용비중 59%, 1인당 현금보유액 91달러’ …
한국사회의 단적인 모습이다. 밥을 먹어도, 버스를 타도, 심지어 편의점에서 5000원짜리 담배 한 값을 사도 현금이 필요 없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족하다. 아니 스마트폰만 있으면 거의 모든게 해결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현금 사용을 부추기는 사회’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사회적 통념에다 ‘표풀리즘’까지 겹치면서 신용카드 보다는 현금을 쓰게 만드는 사회라는 얘기다. 현금이 돈이고, 그게 부(富)의 상징이 됐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데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20세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비현금화 점수 69점…한국은 ‘티핑 포인트’=한국의 신용카드 보유비율은 여타 어느 국가에 비해도 높은 축에 속한다. 미국(67%), 네덜란드(62%)에 비해 월등히 높다. 심지어 ‘현금없는 사회’에 가장 근접했다는 캐나다(81%) 보다도 높다.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한국의 비현금 결제 비중도 70%로 미국, 독일, 싱가포르와 같은 단계에 있다. 사실상 ‘한국=현금 없는 사회’인 셈이다.
하지만 마스터카드는 한국을 ‘현금 없는 사회’에 진입하기 직전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ㆍ작은 변화가 발생하면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단계)로 평가한다. 비현금화 준비점수는 69점에 불과하다. 같은 체급의 비현금 결제비중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82점), 독일(83점), 싱가포르(80점) 보다도 한 참 뒤떨어진다.
또 하나 재미난 점은 1인당 신용카드를 평균 1.9장 들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현금 보유 규모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금보유액은 1인당 91달러로 오스트리아(148달러), 독일(123달러) 보다는 낮지만 미국(74달러), 프랑스(70달러) 보다는 많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현금을 들고 다녀야 안심을 한다는 얘기다.
현금이 있어야 안심하는 한국민의 정서는 5만원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박범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2010년~2015년 6월말) 5만원권 지폐의 공급량 및 회수율’에 따르면,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5만원권 총 발행액 90조7956억원 중에서 회수된 금액은 43조245억원에 불과하다. 연평균 회수율이 불과 46.25%로 절반도 안된다. 심지어 지난해엔 회수율이 25.8%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지방의 한 시중은행 ATM기에는 ”한국은행의 5만원권 통화회수율이 낮아 전 금융기관에 5만원권을 축소공급하고 있어 5만원권 지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기도 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현금을 써라…한국, 현금 부추기는 사회?=한국이 높은 신용카드 보유비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현금’에 목매다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적 통념과 포퓰리즘, 오락가락 세제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효찬 여신금융연구소 실장 이와 관련 “국내에는 아직까지 일부 업종과 계층에 현금선호현상이 존재하고 있다”며 “높은 신용카드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국내 지하경제 규모는 아직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20%)을 크게 상회(25%)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원권 보유 사유중 ‘예비적 보유’가 47.4%(가계 기준)에 달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현금을 장롱 속에 쟁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 업계 한 관계자는 “카드사용은 소득공제 혜택 여부에 따라 들쑥날쑥한다”며 “매년 조변석개식으로 바뀌는 세제정책으로 인해 카드사용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016년까지 일몰기간이 연장된 카드사용 소득공제 혜택을 연장하고, 영세 가맹점의 카드수납 시 부가세공제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금’을 부추기는 각종 사회적 통념과 각종 제도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금대용이 가능한 백화점 상품권은 개인의 경우 신용카드로 구입이 불가능하다. 또 대부분의 대학교는 여전히 신용카드의 등록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으며, 저축성 보험도 사실상 신용카드 납부가 불가능하다.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생활이 가능할 법 한데, 정작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치권의 표퓰리즘에 카드 수수료가 정해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신금융연구소 이 실장은 “전자지급결제 수단 보급과 보안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증가, 결제 금액 소액화에 따른 수수료 감소, 업종별 이익단체의 수수료 인하 요구 등이 수익구조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카드업종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면 카드 회원에 대한 부가혜택도 축소될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현금사용에 대한 기회비용을 낮춰 현금 사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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