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년 동안 2만명 패스…그들(수재)만의 리그 합격률 2.94% 좁은 문 - ‘출세ㆍ인생 역전’ 상징에서 ‘그들만의 리그’ 비판까지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엄마를 위해 성공하자! 합격하자!”

지난 9월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 전시회가 열렸다.

빈방 전단지부터 고시식당까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고시를 준비했던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시촌 풍경들이 전시 공간을 채웠다.

이 가운데 고시원 내부를 복원한 책상 앞에 붙어 있던 한 포스트잇 문구가 관람객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수재들을 웃고 울게 했던 사법시험이 2017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지난 1963년 최초로 실시된이래 52년(57회)동안 전국적으로 내로라 70만2513명의 수재들이 도전해 2만609명만이 ‘좁은 문’을 통과해 당당히 꿈을 이뤘다. 합격률은 2.93%에 불과했다.

긴 역사 만큼 시험 방식이나 합격 인원도 수십 차례 바뀌었다.

1969년까지 사법고시는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하는 절대점수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1967년 합격자가 5명에 그치는 등 인력 수급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1970년부터는 지금의 정원제가 도입됐다.

그후 10년 동안 합격자가 60~80명 선에서 유지돼 왔지만 1980년 사법시험령이 전면 개정되면서 합격자는 300명까지 증가했다.

1995년에는 대법원과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사법개혁안으로 ‘사법시험 선발인원 단계적 증원’이 결정되면서 사법시험 제도는 또 한번 전기를 맞이한다. 1996년 합격자 500명을 배출한 이후 매년 100명씩 증가해 2001년부터는 ‘합격자 1000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고시낭인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법조인 양성을 로스쿨에 맡기는 ‘로스쿨법’이 2007년 통과되면서 사법고시는 역사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됐다.

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사법고시는 숱한 화젯거리의 온상이 되곤 했다.

사법고시 사상 가장 큰 성공신화로는 단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힌다. 1975년 당시 서울대 등의 명문대 법대 출신이 합격자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 상고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의 합격은 대한민국 사회를 놀라게 했다.

고승덕 전 국회의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 전 의원은 대학교 1학년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해 준비 단 6개월 만에 1차 합격을 이뤄냈고, 당시 역대 최연소 합격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대학 재학기간동안 외무고시를 차석으로,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해 ‘고시의 제왕’에 올랐다.

그밖에 올해 초에는 김신호 경위가 현직 경찰관 중 최초로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에 올랐고,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씨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성들의 비약적인 합격률 증가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70년대까지 매년 한 두 명에 불과했던 여성 합격자는 2000년대 이후 30~4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한편 지난 13일 법무부가 발표한 57회 사법시험에서는 연세대학교가 합격자 22명을 배출해 사상 최초로 서울대학교(15명)을 제쳤다. 내년에 열리는 마지막 사법시험에서는 100명이 선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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