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부당이득 혹은 불로소득이 부의 세습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두 가지 공공의 적이라 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인 투자를 억제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사회에서 지금까지 부의 축적과 증식에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소득이었다. 이것은 주로 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과 고속성장의 산물이다. 도시화와 지역개발에 따라 갑자기 땅 부자들이 탄생하고, 중산층들도 아파트와 땅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겼다. 고속성장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당시가 부의 형성기라면 이제는 축적된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우리사회에 중산층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그 증거다. 오죽하면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선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필요하다는 자조적 우스갯소리가 생겨났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증식에 대한 가능성이 있으면 그곳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불법적 이득이라 할지라도 막기는 쉽지 않다. 이때 사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의식에 기대는 것은 별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효과도 없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과 의지다. 부의 세습이 상속세와 같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다면, 부당이득이나 불로소득은 세금을 통해 환수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전세대란과 전세가격 폭등은 우리사회에서 부당이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고, 전월세는 법적 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오르고 있다. 전세난민보다 더 열악한 월세난민이 양산될 상황이다. 정부는 월세난민에는 관심도 없는 듯이 보인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는 손쉬운 정책을 택한 정부로서는 주택임대차 문제는 외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월세대책은 경제문제인 동시에 살 권리가 걸린 국민의 생존권에 속한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도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우리사회의 전세나 월세 문제는 지금까지 정부의 무관심 덕택으로 집주인에게 일정부분 부당이득의 성격을 띨 수 있었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정확하게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부로 인상되는 전세나 월세, 임대료를 잡기 위해서는 임대소득에 대한 엄격한 과세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하며 효율적인 방안이다. 이것은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된 전월세상한제 도입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과는 달리 이미 법적인 장치가 갖추어져 있고, 기술적으로도 과세 자료의 파악이 가능하기에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할 수 있다. 집주인이나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린다면 그만큼의 소득에 대해 정확히 세금을 부과하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적 문제는 돈에 대한 사랑과 직결되어 있다. 1930년의 케인즈는 경제가 충분히 발전한 100년 후면 돈에 대한 사랑을 미화할 가식적 의무가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 예견했지만, 지금 세계는 돈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충만하고 있다. 돈에 대한 사랑이 나쁘랴.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굳이 억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당이득이나 불로소득에 대해서까지 인정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모습은 아니다. 그건 아담 스미스 이후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룰이다. 우리사회에서 감세를 주장하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 철폐를 외치면서, 소득에 대한 정당한 과세라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지극히 자가당착적이다. 케인즈 식으로 말해보자. 만약 그들이 혹여 경제 전문가라면 차라리 치과의사가 나을 것이다. 케인즈는 경제문제란 충치를 뽑는 것처럼 전문가들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전월세 문제는 바로 그런 문제다. 현 정부가 원칙을 중요시한다면 서민들과 많은 중산층들의 생존권인 전월세 문제에 경제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적용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