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재벌총수들은 죄가 중해도 집행유예’라는 등식이 오래도록 우리의 경제 법정을 지배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등식이 지금도 유효한 지 여부가 머지 않아 판가름 난다.

예전에는 1심부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도 일반의 여론이 좋지 않자, 같은 집행유예라도 형량을 높였다.

7~8년 전부터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이라는 공정가가 메겨졌다.

그러나 ‘갑질’, ‘금수저’라는 용어가 반(反)기업정서를 부채질하면서, 최근 1~2년간 1심부터 집행유예를 받는 재벌 총수는 거의 없다.

효성 조석래 회장 ‘흐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 최창영) 심리로 지난 9일 열린 조 회장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에게는 징역 5년과 벌금 150억원을 구형했다.

조 회장은 2003년부터 그룹 임직원들에게 5000억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이 과정에서 세금 1500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700억원대 횡령과 200억원대 배임 혐의도 받고 있다.

조 회장 측은 “20여년전 고도성장기에 종합상사 사업을 하면서 발생한 손실을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떨어내지 못한 것이다”며 항변했다. 심장부정맥 치료를 받고 있는 조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 긴 말씀 드리지 못한다”며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200억원 이상의 조세포탈 범죄의 기본형은 5~9년이다. 300억원 이상의 횡령ㆍ배임죄는 5~8년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상한선이 징역 3년인 만큼 검찰의 구형량을 절반 이상 깎고 거기에 집행유예까지 선고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효성 측은 직원들로 방청석을 채우는 구태로 ‘법정 알박기’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효성 직원들은 법정 입구를 막아섰다. 40석 가량의 방청석을 효성 직원들로 채워졌다.

결국 재판부는 방청객들의 소속을 확인한 뒤 취재진에게 자리를 비키게끔 했다. 효성 측은 “직원은 15명뿐이었고 법정이 작아서 생긴 일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재판정의 방청석을 회사 직원들로 채우는 구태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CJ 이재현 회장 ‘맑음’?= 실형을 선고한 항소심이 대법원에 의해 깨진 CJ 이재현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도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이원형)는 10일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진행한다.

이 회장은 1600억원 규모의 조세포탈ㆍ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기소됐다. 1심은 징역 4년을, 2심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법원이 법 적용을 잘못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회장의 배임 혐의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이득액을 계산할 수 없음에도 액수에 따른 가중처벌조항이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적용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며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밝혔다.

현행 특경가법은 배임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50억원 미만일 때 3년이상의 유기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형법상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을 법정형으로 정하고 있다. 업무상 배임의 경우일지라도 10년 이하 징역 내지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량이 줄어드는 것은 거의 확실할 것으로 보이고 신장이식수술 후유증을 앓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면 집행유예까지 가능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두산 박용성 회장, ‘공식대로’?= 권력형 비리 사건과도 연루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은 법원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가장 물음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장준현)는 지난 2일 ‘중앙대 특혜 비리 사건’으로 박범훈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과 함께 기소된 박 회장의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박 회장은 중앙대 이사장 시절 본ㆍ분교와 적십자간호대학 통폐합, 단일교지 승인 등을 대가로 박 전 수석에게 상가수익권 등 1억원 상당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또 중앙대 시설을 우리은행에 10년간 전속 임대하는 대가로 받은 100억원을 교비회계가 아닌 법인회계로 편입해 중앙대에 해당 금액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수석에게 징역 7년을, 박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박 회장은 앞선 재벌 총수들과 달리 권력형 비리에도 연루된 만큼 실형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검찰의 구형량을 고려했을 때 법원이 기업인들에게 공식처럼 적용해 온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도 가능한 상황이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권력형 비리를 엄단하는 차원에서 실형을 선고할 수도 있는 만큼 최근 법원에 몰린 기업인들 사건 중 가장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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