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2015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 소식이 발표되면서, 동시에 지면을 달군 기사들이 있었다. 왜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가?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자조적인 그리고 비판적인 분석 기사와 사설들이었다. 특히 올해 일본에서는 오무라 사토시와 카지타 타카아키가 각각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두 분야에서 수상하면서, 예년보다 더 자극적인 어조로 아직도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국내 현실에 대한 자조와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일본을 부러워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노벨상 뉴스는 까맣게 잊혀졌고, 다른 사회 이슈 기사들이 지면을 채우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씁쓸한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이전에, 왜 노벨상 수상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궁금증이 먼저 생긴다. 좋아하는 연구를 열심히 하다 보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게 되면, 그 공로를 인정하여 수여하는 것이 노벨상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사회 인식은 노벨상 수상 자체가 과학의 목표가 되어 버린 듯 하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적으로 목표와 수단이 뒤바꾸어서 개인은 불행해지고 조직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연구 개발 분야에서 수단과 목적이 바뀐 상황은 비일비재 하다. 적지 않는 연구 책임자들이 연구의 목적은 국가 연구비 선정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최종 목표인 연구비를 따기 위해, 논문을 찍어내고, 그러기 위해 효과적인 연구 주제를 선택한다. 흔히 유행하는 분야를 골라 공무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키워드를 잡아야 한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본인이 시작한 연구개발 사업으로 실적 결과물이 단기간에 나와야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주제나 장기 투자가 필요한 주제들은 투자를 기피하게 된다. 앞 뒤가 바뀌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 연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과학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비가 지원되는 시스템이 아니고, 연구의 목적이 연구비 선정이 되어버렸다. 그러기 위해서 연구가 아닌 외부 활동을 하거나, 연구 시간의 대부분을 연구비 제안서 작성에만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더욱 연구비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수단과 목적이 바뀐 상황은, 비단 연구 개발 분야뿐만이 아니다. 대학 입학이 그 다음 진로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초중고등학교 12년 과정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이렇다 보니, 소위 명문대에 입학생 중에도 적지 않은 학생이 입학 후 방황을 한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인터넷 게임 등에 빠져 폐인 생활을 하다가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명문대 진학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이미 달성해 버렸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볼만한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대학교 고등교육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단기 동기 부여를 위해서 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삼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한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국내에서 본격적인 기초과학 연구가 가능해 졌다. 적어도 100년이란 시간 격차가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한 민국 기초과학의 수준은 단 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여전히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노벨상이 국내에서도 많이 나올 것이다. 국내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던 나오지 않던 간에, 연구 자체를 좋아하고 잘 하는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그 환경 자체를 노벨상 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래를 희망한다.

미국 배우 캐서린 햅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 자체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상은 내가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캐서린 햅번은 아카데미 주연상 최다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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