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올더스 헉슬리의 화제작 ‘멋진 신세계’에는 소마(soma)라는 약이 등장한다. 하루에 두 알씩 먹는 이 약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묘약이다. 소마 한 알이면 화가 바로 가라앉고, 적을 용서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년간 전문적인 마음수련을 해야 하는 일이 단지 몇 그램짜리 알약 하나로 가능한 것이다. 모든 인간이 성인군자가 되는 세상이다. 다국적 글로벌 4인조 밴드 마그나폴의 새 미니앨범 ‘SPACE KITCHEN’의 수록곡 ‘SSSOMA’는 알약 하나가 만들어내는 코마 상태, 휴머니즘의 반전을 그려낸다.
마그나폴의 이번 앨범은 여러 겹의 시간층이 느껴진다. 프로그레시브한 클래식 멜로디 라인은 과거의 감수성의 한 쪽에 닿아 있지만 질주본능으로 그려내는 세계는 미래를 향하고 있다. 특히 흥겨운 가락들은 메탈사운드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마그나폴만의 독특한 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2일 서교동 밴드연습실에서 만난 마그나폴은 “이번 앨범에서 우주적인 공간감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리의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라고 도중모(27ㆍ기타)는 강조했다. 이들의 사운드는 사실 깊고 아득하게 멀어지는 우주적 소리라기보다 거칠게 부딪히고 퍼지며 돌아오는 소리다. 내달리는 사운드는 헤비하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코드가 고개를 들며 더 이상 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그나폴의 스페이시 록은 좀 더 인간적이다.
타이틀곡 ‘MUSKAPPLE’만 해도 그렇다. 금단의 열매를 따야 할까 말까, 연인이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가고 있다면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이다. 위험하고 금지된 것이지만 욕망한다면 원하는 것을 하라고 이들은 외친다.
편한 노래들이 가득한 가요계에서 이런 외침은 튄다. 자기고백만 있는 시대, 귀에 편한 것에 끌리는 시대에 타인에게 말걸기, 거칠게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마그나폴의 영어 노래가사 역시 간단치 않다. 영문학 석사과정에 있는 케빈 하인츠(32ㆍ보컬 겸 기타)는 “은유적, 추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며, “의미가 뭔지 해석하기는 듣는 사람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MUSKAPPLE’이란 말도 케빈이 만든 신조어. ‘MUSKAPPLE’이 뜨거운 에너지를 보여준다면, ‘FEATHERS OF CATS’는 기타의 풍성한 리프 패턴을 즐길 수 있다. ‘LICK THE BLOOD’는 대중과 호흡하기 좋은 곡이다.
이번 앨범은 마그나폴의 멤버 교체 이후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2010년 데이비드, 케빈, 닐 등 3인조 다국적 밴드로 출발한 마그나폴은 닐이 탈퇴하고 지난해 여름 도중모와 이연수가 들어오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데이비드 홀든(30ㆍ드럼)은 도중모의 기타가 케빈의 음악적 성격과 비슷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듀얼 기타 연주를 이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도 그런 의미다.
케빈과 데이비드는 6년 전 한국을 찾았다. 아일랜드 출신인 데이비드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틀에 박힌 생활이 지루했다. 새로움을 찾아 아시아를 여행하다 한국에 가방을 풀었다. 한국ㆍK-팝에 대해 몰랐던 시절이다. 데이비드는 대학 때 전공한 회화를 앨범과 뮤직비디오 제작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케빈 역시 미국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던 차 한국 친구의 말에 솔깃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인디밴드로 산다는 건 어떠할까.
넷은 한목소리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예술이란 얘기다. 돈이 된다, 안 된다를 따지는 건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메탈리카도 젊었을 때 기타치면서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음악이 좋아 하는 것일 뿐이죠. 앨범 트랙 하나를 재화가치로 여기게 된 건 오래 지 않잖아요. 누군가 음악을 듣고 좋아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부수적인 거죠.”(도중모)
“아일랜드에선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를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밴드를 지원하진 않아요. 아티스트로 살면서 금전적인 문제가 있지만 사회를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진짜 아티스트라면 골방에서 라면만 먹어도 음악이 나와야죠. 그게 아티스트 아닌가요?”(데이비드)
이들은 대중은 늘 음악을 듣길 원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대형기획사의 지원을 받아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에 언젠가 질리면 또 다른 음악을 대중이 찾을 것이란 기대다.
“요즘엔 인디신도 대중화돼서 많은 이들이 공연을 보러와요. 다양한 밴드들이 있지만 현재는 달달한 게 먹히는 편이에요. 시류를 쫓아 많이 팔아야지 하기보다 하고 싶은 걸 해야죠.”(이연수ㆍ27ㆍ베이스)
마그나폴은 지난해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2013년 인천펜타포트 록페에서 펜타슈퍼루키 경연 대상을 수상했으며, 조용필의 ‘헬로’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4월 4일 오후 8시 홍대 롤링홀에서 단독공연을 갖는 마그나폴을 올해에는 4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록페스티벌 현장에서도 가까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