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방송인 노홍철은 음주운전 사고 이후 안방으로 복귀했다. “난 한국의 연예인인데, 음주운전으로 모든 걸 다 잃었다”며 네덜란드 커플의 차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토로했다. 함께 한 청년들에겐 “나 실업자라고 무시하냐”고 자기 비하를 서슴치 않았다.

기획 단계부터 노홍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MBC 2부작 추석 특집 예능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 하이킹’이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평균 3%대다. 숫자만 저조한 건 아니었다. N포세대를 위한 희망찬가로 홍보됐던 프로그램은 방송 이후 공감은 커녕 논란을 샀다. 취업이 웬 말, 연애와 결혼, 나아가 인간관계, 꿈과 희망도 포기하는 20대는 몇 해 전부터 스스로를 ‘잉여’라 불렀다. 자조 섞인 체념이었다. 빚을 내서 대학을 다니고,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학교로 다시 돌아와 스펙을 쌓는다. 이런 생활을 한 4년쯤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취업을 하거나 못 하거나 주머니 속엔 빚만 쌓인다.

‘잉여’는 쓸모없는 사람들이었다. 대출을 끌어안고 대학 졸업장을 땄지만 비슷한 스펙, 비슷한 환경의 대졸자는 수십만 명에 달한다. 요즘 20대 사이에선 “명문대가 아닐 바에 대학은 왜 다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다. 대기업 입사에 ‘스카이(sky)’ 출신이 아니라면 서류 통과의 희망조차 꿈꾸기가 어렵다. “부모가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진다. 힘들게 취업을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첫 월급은 대출 상환으로 돌아간다. 학벌에 따라 두께가 달라지는 월급봉투로 인한 박탈감은 번외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사회적 화두가 된 ‘N포세대’를 끌어안으며 출발했다. 동명의 영화와 같은 컨셉트였다. 20대 청춘들이 단돈 18만원으로 20일간의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노홍철과 함께다.

돈도 없고, 능력도 부족한데 넘쳐나는 건 ‘잉여력’, 즉 ‘쓰고 남은 나머지’ 뿐이다. 사회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제작진은 방송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스스로는 잠재력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잉여’로 분류되는 청춘들. 이것이 바로 이 시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잉여’의 새로운 정의”라며 “이들 잉여 청춘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언제든 새롭게 도전해 비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잉여’는 단순한 루저가 아니라 기회와 도전을 통해 빛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아직 청춘이기에 ‘잉여들의 히치 하이킹’은 사회에선 쓸모없다고 손가락질하는 잉여력이 20대의 잠재력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새롭게 도약할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프로그램일 것으로 보였다.

프로그램은 그러나 출발부터 공감을 사지 못했다. 방송을 통해 노홍철의 존재 못지 않게 눈에 띈 건 일반인 출연자 네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엔 베스트셀러 여행작가 태원준, 연예인 못지 않은 비주얼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료니, 한류스타 이민호와 같은 기획사에 소속된 신인배우 송원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동욱이 모였다. 이 네 사람은 과연 현실의 잉여들을 대신했을까. 거기에 한 때는 잘 나갔던 방송인 노홍철이 함께 했다. 이미 프로그램 기획 당시부터 노홍철의 유럽여행이 해당 프로그램의 사전 답사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이미 이름을 알린 사람들이었고, ‘취준생’이라고 하나 명문대 졸업장을 가졌다. 신인배우라지만 방송 전후로 소속사에선 방송 담당 기자들에게 수차례 보도자료를 보냈다.

출연자들의 고스펙에 돌아온 건 박탈감뿐이었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지켜본 뒤 “잉여라고 다 같은 잉여가 아니었다”, “잉여에도 계급이 있었다”는 자조적인 반응을 냈다. 섭외 자체가 이 시대의 20대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그로 인한 분노를 헤아리지 못한 셈이었다.

제작진은 “취업난 등으로 인해 경제활동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상당수 20~30대 청춘들은 스스로를 ‘잉여인간’으로 부르고 있다. 고학력, 고스펙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꼭 잉여가 되는 것도 아니”라며 각 분야의 잉여들을 섭외했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경우에 따라 각 분야에서 성공을 맛본 사람의 조합으로 비쳤고, 누군가에겐 비단길 미래를 걸을 것처럼 보이는 출연자도 있었다. 제작진의 이야기처럼 잉여세대에게 스펙과 학력은 별개일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잉여세대엔 서글픔이 있다. 가진 게 너무 없어 루저를 자처하고, 그것으로 자위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20대가 안은 큰 분노는 이 사회엔 불평등, 불공정이 난무한다는 데에도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한들 자신의 손에 쥔 능력과 스펙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기에 잉여를 자처하며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제작진은 그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에도 이유는 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