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일본에 이어 한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중화권.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매력이 함께 녹아있는 문화의 용광로로 오래전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한국 방문 일정은 빠트려도 홍콩 방문 일정만큼은 반드시 챙기는 이유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홍콩의 인기 라디오 채널 ‘커머셜라디오(Commercial Radio 2-903)’의 ‘인터내셔널 플레이 차트(2014년도 제5주차)’ 1위에 오른 곡은 잘 나가는 한류스타의 곡도 영미권 팝스타의 곡도 아니었다. 전 세계 모든 장르의 팝을 대상으로 순위를 집계하는 이날 차트의 정상을 차지한 곡은 한국의 팝재즈밴드 윈터플레이 정규 3집 ‘투 패뷸러스 풀스(Two Fabulous Fools)’의 수록곡 ‘셰이크 잇 업 앤 다운(Shake It Up And Down)’이었다. 윈터플레이의 뒷줄에 선 이름은 비욘세, 브루노 마스 등 세계적인 팝스타와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걸스데이 등 한류스타들이었다.

윈터플레이 “아이돌 중심 K팝 한류의 새로운 대안은 우리가 될 것”

뿐만 아니라 윈터플레이는 지난해 10월 중국, 홍콩, 대만, 마카오에서 정규 3집을 라이선스로 발매해 홍콩레코드, HMV 등 각종 재즈 차트에서 1위를 석권한 바 있다. 일본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송스 오브 컬러드 러브(Songs of Colored Love)’는 일본 아이튠즈 재즈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윈터플레이는 한 세탁기 광고의 삽입곡 ‘해피버블(Happy Bubble)’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외엔 여전히 국내에선 낯선 이름이다. 지난 10일 서울 이태원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윈터플레이의 멤버 이주한(트럼펫), 혜원(보컬)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주한은 “중화권과 일본에서 앨범을 내며 활동해온 시간이 적지 않아 이들 지역에서 우리의 이름은 익숙한 편이지만, 차트 정상까지 오를 줄은 몰랐다”며 “3집의 음악이 전작에 비해 팝에 가까운 편이어서 현지 대중이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K팝은 아이돌 그룹 중심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낯선 재즈로 해외 시장에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윈터플레이의 역발상 때문이었다.

윈터플레이 “아이돌 중심 K팝 한류의 새로운 대안은 우리가 될 것”

이주한은 “홍콩을 비롯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는 한국보다도 먼저 재즈 페스티벌이 활성화 돼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무대에 오르는 지역”이라며 “언젠가는 반드시 아이돌 중심의 K팝이 한계에 부딪힐 때가 올 텐데, 그때 우리가 K팝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해외시장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혜원은 “실제로 태국, 싱가포르 지역의 각종 재즈 페스티벌 주최 측으로부터 많은 초청이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한국인데 정작 한국에선 재즈라는 장르의 한계 때문에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윈터플레이는 K팝 한류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지난해 12월 홍콩 최고 권위의 TV 음악프로그램 ‘제이드 솔리드 골드(Jade Solid Gold)’에 해외 뮤지션 최초로 출연했던 윈터플레이는 세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출연진에 감탄했다고 회상했다.

혜원은 “원로에 가까운 중견가수부터 아이돌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며 “무엇보다도 방송국 제작진이 우리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좋은 사운드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이주한은 “한국의 방송 환경은 밴드가 출연해 라이브로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에 매우 열악한 편”이라며 “들리는 음악만 들리는 다양성을 상실한 음악 생태계는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재즈는 클래식 다음으로 역사가 깊은 음악이고, 각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재즈를 배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 여러 나라에 소재한 한국문화원이 앞 다퉈 아이돌 그룹을 다양한 무대에 세우는 것처럼, 실력 있는 실용음악과 재즈 전공 학생들을 선발해 무대에 올려 견문을 쌓게 한다면, K팝의 장르 다변화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윈터플레이는 다음 달 6일 오후 5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논스톱 재즈 피버(Nonstop Jazz Fever)’를 벌일 예정이다. 윈터플레이는 지난해부터 서울 시내를 달리는 버스와 한강 유람선 위에서 콘서트를 벌이는 등 다양한 콘셉트의 무대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혜원은 “이번 콘서트는 정규 3집을 통해 선보인 팝적인 재즈를 정식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선보이는 첫 무대”라며 “공연장에서 듣는 우리의 음악은 오디오로 들을 때보다 훨씬 리듬감이 살아있고 신난다. 벚꽃 피는 봄날의 일요일에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이주한은 “최근에는 무대에 올리지 않았던 데뷔 앨범 수록곡들도 대거 들려줄 계획”이라며 “무대를 영화처럼 구성해 윈터플레이의 지난 7년 간의 역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콘서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