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증권사들이 과감하게 매도 리포트를 쓰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올해 3월 증권사들에 일갈했다. 평균 90%가 넘는 리포트들이 ‘매수’일색인 상황을 벗어나 증권사들부터 투자자 보호에 자율적으로 나서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최근 3개월여를 비교했을 때 대다수 국내 증권사들은 매도 리포트를 단 한 건도 쓰지 않고 있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30일부터 이날까지 KDB대우와 삼성, 현대, 하나금융투자, 미래에셋, KB투자, 키움 등 국내 26개 증권사 가운데 20개 증권사가 단 한 건의 매도 리포트도 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이들 증권사들이 3개월여 간 쓴 모든 리포트는 매수를 권고하거나 가진 주식을 보유하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매도 리포트 비율은 ‘0%’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000선 후반에서 5% 가량 하락했다. 거칠게 말하면 증권사들의 얘기만 믿고 주식을 보유 또는 매수한 개인투자자라면 5%만큼의 손실을 봤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 대열에 동참한 것도 눈에 띈다. 한국투자증권의 매도리포트 비율은 2.9%로 집계됐고, NH투자증권도 1.6%의 매도 리포트를 써냈다. 메리츠종금증권(2.2%)과 유진투자증권(1.6%)도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매도 리포트’ 혁명을 주도했던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8.3%의 매도 리포트를 써냈다.
반면 외국 증권사들과 비교하면 국내 증권사들의 갈길은 여전히 멀다. 매도 리포트 비율이 가장 높은 증권사는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40.9%)이었고, 씨엘에스에이코리아증권(39.0%), 맥쿼리증권(16.0%), 다이와증권캐피탈마켓코리아(14.5%), 비엔피파리바증권(13.4%) 등 순이었다.
증권사 관계자는 “매도 리포트 비율이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냈다하면 매수만 권고하는 증권사들의 리포트를 누가 믿을 수 있겠냐. 기관 영향력이 약한 이유에는 믿을 수 없는 리포트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 주가가 12만원대로 추락할 때에도 증권사들은 현대차 목표주가를 22만원에 고정시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논란과 동부그룹 사태 때에도 증권사들의 분석 보고서는 번번히 빗나갔다. ‘장밋빛’ 전망만 쏟아낸 것이 원인이었다.
당초 매도 리포트 비율을 공시하겠다는 발표에 일선 증권사 직원들의 반발 거셌다. 법인 영업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매도 리포트만 문제냐 등의 반발이었다. 한화증권 애널리스트 대다수가 직장을 떠났고 ‘현장을 모르는 얘기’라는 불만도 쏟아졌다. 여전히 대다수 증권사들이 단 한 건의 매도 리포트도 쓰지 않고 있는 것에는 이같은 일선의 반발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