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양의 ‘독재’ 24시
독학으로 재수하는 ‘독재생’에게 생활스터디는 필수 인터넷 카페서 만난 멤버들과 초단위로 시간 재며 서로 채찍질
친구 페북에 올라온 신입생 환영회 사진 부러움·두려움에 마음 상하기도 하지만 화창한 캠퍼스 생활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오전 6시, 알람소리에 맞춰 칼같이 눈을 뜬 ‘나혼자(20)’ 양. 세수를 하고 엄마가 해준 아침을 먹는다. 나 양은 한 끼를 많이 먹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공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는 영양소별로 균형있게 소량의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을 먹은 후 7시, 트레이닝복을 입고 독서실로 향한다.
나 양은 ‘독재생(독학으로 재수하는 사람)’이다. 고3이었던 2012년 수능에서 간발의 차로 숙원이었던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 고려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내기 전날 재수를 결심했다. 한 번만 더 보면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모두 말렸지만 부모님께서는 “인생에서 1년은 별거 아니니,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격려하셨다.
나 양은 동네 독서실 대신 대학생 고시공부를 하는 언니오빠들이 다니는 독서실에 다닌다. 동네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독서실은 시끄럽기도 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을 보며 공부하면 “나도 저들처럼 대학생이 돼서 내 꿈을 위해 정진할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7시20분이 되자 초시계를 누르고 인증샷을 찍는다. 사진은 휴대폰 커뮤니티인 ‘밴드(네이버 폐쇄형 SNS)’에 올린다. 재수를 한다고 휴대폰을 모두 없애버리고 오롯이 혼자만 공부하는 건 모두 옛말이다. 재수종합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재수생에게 서로를 채찍질해줄 수 있는 ‘생활스터디’는 필수다. 나 양 역시 인터넷 수능 관련 카페에서 스터디 멤버를 찾았다. 5명의 멤버는 매일 7시20분 밴드를 통해 공부 시작을 알리는 출석체크를 해야 한다. 재수생과 고시생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초시계 스터디’다. 초단위로 시간을 보여주는 초시계를 켜고 하루 동안 몇 시간을 공부했는지 공유하는 것. 매일 인증을 하지 않으면 벌점이 부과된다. 벌점 3점은 경고, 5점은 ‘강퇴(강제퇴장)’다.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하는 생활스터디이기 때문에 아무리 쉬고 싶은 날에도 무조건 독서실에 와서 출석체크를 한다.
사진을 올리고 재빨리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어듣기 파일을 클릭한다. 오늘도 2문제를 틀렸다. 지난 수능에서도 영어듣기에서 비슷한 유형을 틀리는 바람에 1등급을 받지 못했다. 올해는 어렵더라도 영어 B형을 선택할 계획이다. B형에서 고득점하면 서울대를 가는 데 더 유리하다. 영어듣기가 끝난 후 컴퓨터를 켜고 한국사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기 시작한다. 서울대는 한국사가 필수다. 내신도, 모의고사 점수도 빠지지 않았던 나 양은 지난해 한국사를 소홀히 했다. 올해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강의가 끝나니 12시.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나 양이 점심을 먹기 시작하자 엄마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수학 공부방을 가는 날이다. 나 양이 고3 때 만난 학원 수학선생님은 학원을 그만두고 몇몇 우수한 학생을 데리고 대치동에서 그룹과외를 지도하는 공부방을 운영한다. 나 양 역시 이곳에서 몇몇 친구와 함께 수학 그룹 과외를 받는다. 엄마는 수업을 듣는 동안 인근 카페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의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이곳에서 다양한 입시 관련 정보를 얻어 나 양에게 알려준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4시. 방에 들어가 미리 내려받아놓은 미드(미국드라마) 한 편을 본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쉬어줘야 한다는 게 나 양의 원칙이다. 30분 정도 드라마를 보고 간단하게 저녁을 챙긴 후 다시 독서실로 향한다. 독서실에서는 학원에서 들은 내용을 복습하고, 사회 등 암기과목을 점검한다. 암기한 내용은 매주 일요일 스터디 멤버와 모여 보는 ‘쪽지시험’으로 확인한다.
오늘따라 머리가 복잡하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슬쩍 접속해본 페이스북에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올려놓은 신입생 환영회 사진을 봐버렸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독서실을 벗어나 화창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다. 혹시 남들보다 1년 늦게 가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더디게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독서실 책상에 붙여 놓은 서울대 사진을 바라보고 다시 ‘열공모드(열심히 공부하는 상태)’로 돌아간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 밴드에 퇴근 체크를 해야 한다. 매일 집에 가는 시간에 초시계를 찍어 올리고 오늘 하루 몇 시간 공부했는지를 공유한다. 매주 일요일 만났을 때 한 주의 목표 공부시간을 정하는데, 초시계로 인증한 시간이 목표량보다 부족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나 양은 내일 해야 할 일을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에 붙여놓고 독서실을 나선다. 아직도 봄바람이 차갑다. 하지만 곧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서지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