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 한ㆍ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분야에서는 한국이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본화’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한국경제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와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 내수 부진, 물가상승세 및 성장세 둔화 등 주요 경제상황이 1990년대 초~중반 일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이 지난 50년간 일본의 성장전략을 모방하면서 빠른 성장을 달성했지만 이제는 일본의 과거 실패사례를 교훈삼아 한국만의 독창적인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국면이 된 셈이다. 일본 추격성장에서 벗어나 차별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에만 해도 연평균 4%대의 빠른 성장을 보이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미국을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말 버블붕괴 이후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져 1990년대에는 1.1%에 머물렀고, 2000년 이후에는 0.7%로 주저앉았다.
한국의 경제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한국은 1980년대 3저호황에 이어 1990년대에도 1997년말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겪기 이전까지 7%대의 높은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엔 성장률이 3%대로 낮아졌고, 지금은 3%도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이 일본의 장기불황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무엇보다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구구조의 유사성에서 발견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제활력 저하와 성장 둔화가 가속화했다.
한국에서는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2030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반면 절반 이상이 준비 안된 은퇴를 맞으면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극심한 내수침체와 소비자물가 하락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의 호황기에 축적된 부동산 등 자산버블이 붕괴하면서 소비가 침체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을 겪었다. 기업과 가계가 부채조정을 우선시함에 따라 지출이 억제되고, 금리를 인하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졌고, 경기침체 속의 물가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이 결정타를 날렸다.
20년 후 한국은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와 금리인하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사상최대인 1100조원으로 늘어나 잠재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당장 가계부채가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있고, 2017년 이후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은행 등 금융부문을 거쳐 경제전반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때문에 내수부진→불황형 경상흑자→원화절상→수출위축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디플레에 빠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일부 경기지표가 호전되자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구사하고,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는 등 ’정책적 실기(失機)‘로 사실상 국가경제 붕괴를 초래했다. 구조개혁과 정책신뢰도 제고가 위기 탈출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는 이유다.
일본이 통화정책의 공격적 완화와 엔저 등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최근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지만, 지금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20년 전 일본의 실패 사례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