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탈퇴할 경우 다음엔 러시아를 향해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 집권 시리자당은 좌파성향 정당이고, 옛 소련 붕괴 직전 그리스사회당에 몸담았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러시아와도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18일(현지시간)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이 4시간의 구제금융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일 이뤄진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그리스에 유럽연합(EU) 제재 철회를 대가로 차관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의심이 불거지고 있다고 전했다. 동남부 유럽의 영향력 회복을 노리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그리스 위기를 이용할 것이고, 이는 국제채권단과 협상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그리스의 이해관계가 맞물릴 수 있는 거래가 될 수 있으리란 예상이다.
최근 여러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치프라스 총리는 러시아와 상당히 오랜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FT에 따르면 그는 소련 사회주의 붕괴 시기인 1991년 스탈린주의 그리스 사회당에 입당했다.
러시아 정계 인사들은 그리스와의 유대를 반기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가 EU 자본주의자들의 반러시아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알렉세이 푸쉬코프 두마(러시아 하원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서방이 러시아를 비난하고 고립시키고 있다며 그리스가 다른 EU 회원국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수 세기 동안 이어진 그리스와 러시아의 문화적, 정신적 유대관계를 강조하며 두 나라 모두 종교적으로 그리스 정교회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밝혔다.
한 러시아 금융업계 관계자는 “서방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통을 견뎌내는 능력이 더 강하다”며 EU의 긴축재정 요구에 저항하는 그리스와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는 러시아를 연관짓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치프라스 총리는 러시아의 농산물 금수조치 해제를 요구했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거절당한 바 있다. 당시 만남에서는 차관 요청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EU는 18일 유로그룹 회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오는 22일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유감스럽게도 협상에 거의 진전이 없어 합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의 트로이카(troika)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과 IMF의 구제금융 분할금 72억유로를 놓고 5개월째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가 연금삭감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 젊은 시리자당 당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추가긴축과 혼란(chaos)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혼란을 선택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리스는 오는 30일까지 IMF에 15억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디폴트 발생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그리스의 상환일에 유예기간을 주지 않겠다고 강력히 말했다.
그리스 중앙은행은 향후 ‘통제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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