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버금가고, 최근 한국에서도 ‘국민 애니’가 되다시피한 ‘겨울왕국’ 이상이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공동감독 뱅생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벤자민 레너) 이야기다.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따뜻한 동화가 있고, 성인들이 무릎을 칠만한 현대사회의 풍자가 날카롭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속도’와 ‘움직임’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박진감과 역동성을 갖췄다. 애니메이션의 본질이 ‘그림’이고 영화의 본령이 ‘영상’과 ‘소리’의 어우러짐이라고 한다면, 굳이 ‘실사’를 닮아가고자 하는 할리우드의 현란한 3D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시각적 쾌감과 청각의 즐거움이 그득하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지난 2012년말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이며, 오는 3월 2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 장편 애미에이션 부문 후보작이다. 지난해 LA비평가협회 최우수 애니메이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곰과 생쥐가 주인공이다. 곰아저씨 ‘어네스트’는 가난한 거리의 악사다. 다른 곰들이 거들떠 보지 않고, 돈이 없어 굶기 일쑤지만, 멋진 목소리와 바이올린 연주솜씨를 가졌다. ‘셀레스틴’은 항상 화첩을 옆에 끼고 다니며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생쥐 소녀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먹을 것이 떨어진 어네스트는 거리로 나와 바이올린을 켜고 북을 치지만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외면뿐. 배고픔을 달래려 거리의 휴지통을 뒤지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잠든 셀레스틴을 발견한다. 셀레스틴은 ‘아기곰’의 빠진 이빨을 구하려다 곰들에게 쫓기고, 쓰레기통에 숨어들었던 참이었다. 어네스트는 셀레스틴을 잡아 먹으려다 맹랑한 꼬마 생쥐에게 설득당한다. 결국 셀레스틴의 도움으로 어네스트는 허기를 채운다. 그러다가 곰의 이빨을 구하려던 셀레스틴이 위기에 처하고, 어네스트는 꼬마 생쥐를 구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네스트는 자신의 집에 들어앉으려 하는 셀레스틴을 쫓아보려 하지만, 맹랑하고 앙증맞은 셀레스틴이 싫지만은 않다. 둘은 결국 같이 살기로 하고, 곰은 연주를 하고 생쥐는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해간다. 눈 속에 파묻힌 외딴 산속 집에서 곰과 쥐가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동안 곰과 쥐의 세상에선 난리가 난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곰과 생쥐 세상의 법을 어긴 죄로 수배된 것. 곰과 쥐 경찰은 마침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집을 찾아내 들이닥친다.

영화 속에서 세상은 지상의 곰과 땅밑 쥐들의 것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호 불가침’이 규약이다. 곰들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라며 쥐를 멸시하고, 쥐들은 “우리를 산채로 잡아먹을 것”이라며 곰들에게 벌벌 떤다. 각각 자신의 세상에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가진 것 없고,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래서 외톨이인 존재들이다. 셀레스틴은 치과의사가 되라는 명령으로 곰의 이빨을 구해야 되는 신세이지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어네스트는 부모가 법관이 되라고 했지만, 음악이 좋고 이야기 꾸미는 게 재미있어 혼자 사는 곰이다. 둘은 세상에서 금지한 ‘우정’을 나눈다.

어린 관객들에겐 따뜻하고 정감어린 동화이지만, 성인관객들에겐 문명의 이기와 계급ㆍ권력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성숙한 서사로 받아들일만하다. 회화적인 그림체와 클래식의 선율이 아름답고, 특히 중간에 어네스트의 연주와 셀레스틴의 그림이 어우러져 표현되는 장면은 백미다. 원작은 벨기에태생의 작가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동화다. 20일 개봉.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