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옥고를 치른 이의 유족에 대해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 안철상)는 이모 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유족들에게 3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경상북도민족통일연맹 간부였던 이 씨는 1961년 3월 대구에서 청중 3만여명이 운집한 집회를 열고 “실업자의 일터는 통일에 있다”, “통일만이 살 길이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당시는 분단으로 농업ㆍ경공업 위주의 생산기반을 갖춘 남한과 중공업 위주로 발달한 북한의 경제가 단절된 상태였다. 이 씨는 남한에서 생산되는 면포와 북한에서 생산되는 비료, 전기를 교역하면 맞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 인사 교류, 서신 왕래 등을 하자고 주장했다.
이 씨의 주장은 대통령이 나서서 ‘통일 대박’을 주장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평범하지만, 두 달 뒤 5ㆍ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군부의 눈에는 거슬렸다. 군부는 우선 국력을 키우고 나중에 통일을 하자는 취지의 ‘선건설 후 통일론’을 내세웠고, 이 씨는 쿠데타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법관의 영장도 없이 체포됐다.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론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상 찬양ㆍ고무죄를 소급적용 받았다. 혁명재판소는 이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고, 이 씨는 2년7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뒤 1981년 사망했다.
2012년에 와서야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인적교류, 경제교류를 하자는 이 씨의 주장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전제로 지극히 당연하다. 북한이 주장한 통일론을 찬양, 선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이에 유족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 씨가 영장도 없이 체포된 점, 국가보안법이 소급적용됐음에도 혁명재판소 재판관들이 위헌성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을 들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김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