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현재 전동성당 자리)에서 두 건의 참수형이 벌어졌다. 참수형을 당한 인물은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유교식 상장(喪葬) 대신 천주교 예식으로 치렀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이날의 참수는 신해박해(辛亥迫害), 즉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또한 이는 대규모 박해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자생적으로 천주교 포교가 이뤄진 나라다. 스스로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의 신앙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피로 박해에 맞섰다. 한국 천주교사는 선교보다는 순교의 역사에 가깝다.
1801년 노론 벽파는 천주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았던 남인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으로 신유박해(辛酉迫害)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중국인 천주교 신부이자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여성 평신도 지도자인 강완숙 등이 처형됐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당시에도 3인의 서양인 신부를 비롯해 119명의 교인이 투옥ㆍ처형됐고,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엔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 박해의 절정이었던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당시엔 무려 6000여 명의 신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교황청은 지난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에 대해 시복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시복이 결정된 이들은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명, 신유박해 순교자 53명, 기해박해 순교자 37명, 병인박해 순교자 20명 등이다. 여기엔 이미 시성된 정하상과 정정혜의 아버지인 정약종, 천주교 신분 차별 철폐의 상징인 천민 출신 신자 황일광 등 지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처음 한국을 찾아 시성식을 직접 주재한 순교자 103명보다 전 세대의 인물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지난 1984년 시성은 박해 당시 조선 교구를 담당했던 파리외방선교회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시복은 한국 천주교회의 지속적인 시복시성운동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번 시복은 염수정 추기경 임명과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은 결과로도 분석된다.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은 “1984년 시성식 이후 아직 시복시성이 되지 않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그런 염원이 시성 30주년인 올해 시복의 열매를 맺게 됐다”고 전했다.
교황청 해외선교 매체인 아시아뉴스는 지난 8일 “교황이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개막하는 8월 13일 한국을 찾아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인 15일 시복식을 주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만약 교황이 8월에 방문한다면 시복식은 당초 10월에서 두 달 정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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