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광기의 시작 1990년대 초 버블붕괴…장기 불황의 그늘 2012년 아베 ‘경제회복’ 캐치프레이즈 자극 정치·이념 우경화 1930년대 유럽과 닮은꼴
일본내 비판론 비등 NHK “난징대학살 없었다” 망언 질책 쇄도 무라야마 前총리 “야스쿠니 참배 매국행위” ‘러브레터’ 감독 “편협한 애국론은 일본에 독” 최근 일본 내부에서 우익 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반동’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때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국제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강한 일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우경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부활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아베 총리와 그 측근의 망언 릴레이에 비판의 목소리는 일본 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강한 일본’ 향수 자극=지난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인들은 장기 불황의 그늘에 신음했다.
1990년대 초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로 촉발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은 일본 경제의 활력을 완전히 꺼뜨렸다. 엔고와 글로벌 경제 위기로 수출은 곤두박질쳤고, 기업과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이 열도를 강타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산업시설과 인프라가 초토화되면서 25조엔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고 그 여파로 510여개 기업이 줄도산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G2’ 경제대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의 추락을 지켜본 일본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2009년 54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 정부는 당면한 위기를 하나도 해소하지 못하고 무능함만 드러냈다.
이 가운데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총선에서 ‘경제 회복’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걸고 등장하자 일본인들은 환호했다. ‘아베노믹스’를 통한 경제 성장과 패전국에서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통해 강한 일본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잃어버린 20년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일본인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의 높은 지지율과 우익 세력의 득세에 대해 1930년대 대공황에 휩쓸린 유럽과 같다고 설명한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들이 난국 타개를 명목으로 ‘강한 리더십’을 앞세운 나치ㆍ파시스트 정권에 이끌린 것과 현재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다르지 않다는 것.
이기완 창원대 교수는 “독일이 제1ㆍ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유럽의 강대국으로 국제 정치를 주도하는 핵심국가였다”면서 “현재 일본의 상황이 당시 독일과 거의 같다”고 지적했다.
또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아베노믹스의 성공이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전 대사는 “일본이 지금 이상한 열풍에 빠져있는 것 같다”며 “아베노믹스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처럼 보이고 아베 총리가 임금 인상을 강하게 주장하자 일본인들도 정치와 이념적 문제를 용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내 비판론도 비등=아베 총리와 그 측근의 망언 릴레이에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 공영 방송 NHK 경영위원들의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왕은 다시 살아있는 신이 됐다’ 등 망언이 이어지자 NHK에는 시청자 비판의견이 쇄도했다. 현지 언론은 “언론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일본 침략과 식민 지배 사죄)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매국행위’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사민당 출신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본인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라를 파는 것 같은 총리가 있는가”라며 강하게 질책했다. 이어 “차분히 생각해보면 역시 전범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다”며 “일본이 일미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을 받아들여 국제사회에 복귀했으니 그 약속을 생각하면 총리가 참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하면서 “앞으로는 국민들 목소리뿐”이라고 말했다.
유명 인사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은 최근 아베 정권이 헌법 9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개헌 요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96조를 먼저 개정하는 것은 사기”라며 “총리와 당 대표의 역사 인식 부재에 질려버릴 따름이다. 생각이 부족한 인사들이 헌법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위안부 문제도 각 민족의 자긍심 문제이므로 분명하게 사과하고 제대로 배상하는 것이 옳다”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岩井俊二)도 일본 우익에 날을 세웠다. 이와이 감독은 “일본은 일찍이 침략전쟁을 일으키다가 패전했다는 사실을 너무 잊으며 살고 있다”면서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하려다가 끝내 미국에 패전했다. 그런데도 면책받았다. 편협하고 모자라는 애국론은 일본에 독이 될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천예선ㆍ신대원·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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