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지웅ㆍ양영경 기자] 지난달 서울 모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 ‘밥약과 관련해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영학과 14학번이라고 밝힌 A씨(21ㆍ여)는 “밥약이 새내기의 특권이기 때문에 (선배에게) 사달라고 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평범한 집안의 선배들은 한꺼번에 다수의 후배들에게 밥을 사면 등골이 휜다”며 “처음부터 너무 비싼 밥을 요구하거나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친구들을 데려오는 건 자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이모(25)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나 3월 함께 밥을 먹기로 한 새내기가 약속 당일 “동기를 데려가도 되겠느냐”고 이씨에 물었고 이씨는 1∼2명이 추가될 것을 예상해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는 5명의 새내기가 몰려있었다. 이날 밥값으로 15만원을 지출한 이씨는 “당분간 후배들에게 밥이나 술을 사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학가에서 후배들과 ‘밥약(밥약속)’을 잡은 선배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선배 한 명에 떼로 몰려가 밥을 얻어 먹거나 비싼 밥을 사달라고 조르는 이른바 ‘깡패 후배’들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모(25)씨는 후배들 밥값으로만 현재까지 80만원을 썼다. 밥값이 한달 용돈인 40∼50만원을 훌쩍 넘어가자 적금통장까지 깼다. 김씨는 “동아리 등 학과 활동이 많아 후배들과의 식사자리를 피할 수 없어 돈이 많이 나간 것 같다”며 “언젠가는 후배가 ‘밥 한번 사줄게’라는 말을 듣고 모 패밀리 레스토랑 이름을 댈 때는 마음이 좀 허탈했다”고 말했다.
시급 5800원짜리 아르바이틀 하는 선배 김모(26)씨도 그 시급을 고스란히 후배 밥값으로 쓰는 열혈 선배다. 다른 선배와 비교하는 후배 말에 자존심이 상해 무리해서 밥을 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는 “후배들이 ‘걔는 사줬으면서 나는 안 사줘요?’라고 하면 밥약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선배들도 그래봐야 고작 1∼3살 먹은 사람에 불과하다”며 “부모님에게 5만원을 빌려 후배들에게 밥 사주러 나왔다가 술자리까지 이어져 16만원을 내야 했을 땐 씁쓸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모 국립대에 재학 중인 김모(25)씨는 “선배들도 후배였던 시절에 맛있게 얻어먹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밥약 문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밥약이 선후배 간 관계개선이나 인간관계 진전의 통로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밥만 먹고 돈만 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1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꼴불견 선배에는 ‘밥 한끼 안 사주는 짠돌이 선배’가 4위에 꼽혔고, 꼴불견인 후배에는 ‘별로 안 친한데 밥 사달라고 조르는 빈대 후배’가 2위로 꼽혔다.
반면 좋은 선배로는 ‘돈을 잘 내는 선배(3위)’가, 좋은 후배로는 ‘더치페이를 잘하는 후배(3위)’가 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