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2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선 국민예능 ‘무한도전’의 식스맨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러 명의 후보들 중 ‘누가 낫다’며 추천을 이어가던 이들은 ‘설전’의 말미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무한도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프로다. 그들의 판단으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이윤석의 이야기에 강용석이 거들었다.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이라고 하지 않냐. ‘무한도전’ 걱정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는 이야기는 케이블 채널 엠넷 ‘방송의 적’에서 가수 존박이 자기 자신이자 연예인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덧붙였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한 마디엔 오묘하게도 징그러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의 고단한 일상이 묻어있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 해야할 일이 많다. 초ㆍ중ㆍ고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을 굉장히 성실히, 가급적이면 남들보다 뛰어나게 임해야 한다. 그 시절 가능하다면 “공부만 열심히 하는 바보들에게 잘 보이는 것”(빌 게이츠)도 좋다. 꽃다운 10대를 밤낮없이 공부한 뒤 입학한 대학에선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돌입한다. 정해진 나이에 취업을 하긴 해야겠는데, 취업시장의 경쟁이라는 것은 나날이 상상을 초월해, 이것 저것 다 포기하고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가장 비극적인 ‘달관’자로 만들어버린다고들 한다.
직장인이 되고 나면 더 흉악한 시간들이 기다린다. 아무리 날고 기던 개인이라도 그 안에선 누구에게나 물어뜯기는 행려병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 때 학창시절 ‘공부만 하던 바보들’이 상사가 된다면 혹은 업무로 엮이는 윗분이 된다면 그것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빌 게이츠에 따르자면 잘 보여두는 것은 이 때 중요하다.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미생’의 오 과장이 학창시절 괄시했던 친구로부터 갑질을 당할 일은 덜할 지도 모른다. 험난한 정글을 살다 팍팍하게 모아온 자금을 탈탈 털어 결혼을 하니, 다시 ‘맨 땅에 헤딩’이다. 가정을 꾸렸으니 아이도 낳고 그 아이를 키워내며 현실의 무게를 양어깨에 덕지덕지 올리고 살아가는 길고 긴 삶은 ‘100세 시대’라는 명제 앞에 한숨만 늘게 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넘쳐나는 연예인의 신변잡기에 신경을 쏟다니,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원과 이태임의 욕설 파문이 동영상까지 공개되며 꼬리를 무는 일이 이어되자, 사람들은 문득 “저 사람들 연예계 생활은 할 수 있겠냐”는 걱정 어린 반응도 내놓는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에선 “어차피 시간 지나면 잊혀져”, “우리 걱정이나 해. 아무리 그래도 쟤들이 우리보다 잘 살아” 등의 수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상의 걸그룹 멤버가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던기사의 댓글에서 네티즌들은 “학창시절 추억 쌓는 대신 개처럼 바닥 기며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살아보겠냐”는 한탄 섞인 반응도 내놓는다. 거기에 대고 ‘시기’ ‘질투’라는 조롱도 따라오지만, 특정 연예인 한 사람을 향한 불편한 감정이라기 보단 그동안 수없이 겪어왔던 상대적 박탈의 경험이 총체적으로 묻어난 댓글처럼 비쳐 씁쓸하기도 하다.
매순간 모멸적인 감정들을 견뎌내며 고단하게 버티는, 때문에 고통스럽기까지 한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함엔 점차 희망도 사라지는 듯 보인다. 아무리 치열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어느 순간 좋은 일이 찾아와도 이내 불길함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 이토록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도 눈 앞에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날들이 누군가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박탈감마저 뒤엉킨다. TV 콘텐츠와 그 안에서 활보하는 스타들의 삶은 흥미롭고 진기하며 매력적이다. 그것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감동과 눈물을 준다. 바보상자라던 TV 속 세상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또 다시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버거운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한다. 우리에게도 ‘연예인 걱정’이 결코 ‘쓸데없지’ 않은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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