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회계법인으로 적을 옮긴다고 했더니 지인이 하필이면 대기업들 장부 꾸며주는 회계법인이냐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필자가 근무하는 회계법인으로 입사한 직원(회계사는 아니다)이 상견례 때 담소를 나누던 과정에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회계사에 대한 사회적 오해(?)는 벗어 던질 수 없는 멍에마냥 참 오래도 회계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자에 있었던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분식회계 등 사건들로 인해) 회계사들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본다”는 후배 회계사의 자조 섞인 말에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밀려오던 자괴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금융감독원 발표자료에 따르면 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지원자가 지난해 대비 1127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매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전했던 시험이었다. 9300여 명이나 줄어든 응시자수는 회계사의 떨어진 인기를 방증한다. 벌써 4년째 감소추세다.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회계법인을 떠나 공공기업이나 금융사를 포함한 민간기업에 둥지를 트는 회계사도 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원 중 휴업 회원수가 34.5%에 달하는 실정인데, 더 안타까운 것은 휴업 회계사 비중이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요즘 회계사는 전문직 가운데 3D업종(?)이다. 이유는 명쾌하다. 업무량은 너무 많고, 그에 비해 연봉이 적기 때문. 갑이 아닌 ‘을’로 살아야 하는 직업인데다, 경제적 보상조차 뒤따라 주지 않는 살벌한(?) 근무환경은 요즘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기기엔 역부족이다.

돌 이켜 보면 회계사로 살아오는 동안 이른바 ‘감사시즌’ 때 명절, 생일, 결혼기념일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 좋다는 친구도 비(非)시즌 때나 친구다.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의 양상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되레 더 척박해진 실정이다.

홈그라운드를 떠나는 후배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선배의 한숨은 길어진다.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도 회계선진국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감사투입 시간은 증가하고 감사보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회계사의 삶은 되레 더 퍽퍽해졌다.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증이 요구되는 전문직 가운데 공인회계사는 고도의 직업윤리와 자기정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직업이다. 고객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야 하는 을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을 원칙에 입각해 감시해야 하는 ‘양날의 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회계 스캔들은 회사가 작정하고 조작된 장부로 감사인을 철저하게 속이는 경우도 있으나 감사인이 눈을 감아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눈을 감아주는 대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만큼 잔인하다.

따라서 엄격한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과 모니터링이 필수불가결할 수 밖에 없는데,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았을 뿐, 회계사 본연의 업무는 자본주의 경제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을 떠나는 후배가 있는 반면, 묵묵히 전문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후배도 분명 있다. 회계사라는 직업의 애환을 잘 알고 있는 선배로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공자가 그의 10대 제자 중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젊은 수제자이자 애제자인 안회(顔回)가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늘이 나를 버렸다”며 통곡했다는 일화가 있다. 공자의 학문과 덕행을 후세에 온전하게 전할 수 있는 재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후배 회계사들에게 억지로 직업적 소명과 자긍심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하면, (그저 즐기는 것이므로)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고 했던 공자의 일언(一言)을 떠올리며 회계사로서 ‘안회‘같은 후배들과 함께 ‘홈그라운드’를 굳건히 지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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